이병태 "AI 국민배당금, 상법 개정안과 정면 배치"

입력 2026-05-13 10:55
수정 2026-05-13 11:18
이병태 대통령 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12일 ‘AI 국민배당금’ 제안에 대해 “한국 자본시장의 신인도뿐만 아니라 시장 경제의 근간이 되는 원칙을 크게 훼손하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이 부위원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AI 국민 배당금과 개정된 상법’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하며 주주가치 훼손 가능성을 지적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11일 AI 호황에 따른 초과 세수를 활용하는 방안으로 ‘국민배당금’을 제안한 데 대한 반론이다. 이 부위원장은 초과 세수가 아닌 초과 이익을 징수했을 경우를 기준으로, △기업 이익 배분권에 대한 개입 △투자 유인 저하 △이사 충실의무 혼란 △자본주의 근간 훼손 등을 부작용으로 거론했다.

먼저, 이 부위원장은 기업 이익을 전체 주주에게 배분하는 상법 개정안의 취지와 국민 배당금이 충돌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상법 개정안이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로 확대’해 기업 이익이 지배주주가 아닌 전체 주주에게 공정하게 돌아가도록 하려는 취지라면, ‘국민 배당’은 주주가 아닌 '국민(국가)'이라는 제3자가 기업 이익에 우선권을 주장하는 격”이라며 “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겠다며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압박하면서, 동시에 국가가 정책적 목적으로 기업 이익의 향방을 결정하려는 것은 주주 자본주의의 기본 원칙과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적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라는 상법 개정안의 취지에 맞지 않아 해외 투자자의 신뢰를 훼손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놨다. 이 부위원장은 “만약 기업이 AI로 번 돈을 주주가 아닌 국민 배당으로 내놓아야 한다면 해외 투자자나 소액 주주들에게 한국 기업은 정치적 리스크가 큰 시장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며 “결국 기업의 미래 투자 재원을 고갈시키고 성장 동력을 약화할 위험이 크다”고 썼다. 또 “정책적 불일치가 향후 한국 자본시장의 신인도뿐만 아니라 시장경제의 근간이 되는 원칙을 크게 훼손하는 일”이라고 적었다.

이 부위원장은 국민배당금이 자본주의의 근간을 훼손한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자본주의에서 ‘국민 기업’은 없다”며 “지난 정부에서 은행과 통신이 공공재라는 주장이나 기업의 큰 이익이 초과이익이고 사회적 공유 대상이라는 것은 자본주의 부정”이라고 했다. 또 “AI 수익을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싶다면 '국민 배당'이라는 직접적인 개입보다는, 법인세 체계의 정비나 R&D 세액 공제 환수 등 기존의 재정 정책 틀 안에서 해결하는 것이 상법 개정의 취지(주주 권리 강화)를 훼손하지 않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이 부위원장은 “복지는 세금으로 거두어들인 정부 예산으로 하는 것이지 남의 돈을 빼앗아 하는 것이 아니다”며 “현재 정부가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및 상법 개정안과는 정책적 정합성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했다. 아울러 “정책적 일관성이 결여된 전 세계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포퓰리즘적 접근'이 기업 현장에 혼란만 가중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도 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