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에 종전 압박받는 트럼프 행정부[글로벌 현장]

입력 2026-05-18 07:55
수정 2026-05-18 07:56

미국 중앙은행(Fed) 내에서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등 매파적 기류가 강해지고 있다. 미국의 이란 전쟁 여파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다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연내 한두 차례 금리인하가 있을 것이란 투자자들의 전망이 방향을 틀고 있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금리인하와 인상 모두 검토
오스틴 굴스비 시카고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지난 5월 8일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현재 상황을 보면 금리인하만이 가능한 선택지라고 보긴 어렵다”며 “금리인하와 인상 모두 테이블에 올라와 있다”고 말했다. 굴스비 총재는 “적어도 내 관점에서는 지금 가능한 선택지가 금리인하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굴스비 총재의 이날 발언은 최근 Fed 내부에서 금리인하 기대가 약화하고 있는 흐름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의 대이란 군사 행동 이후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인플레이션 재가속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굴스비 총재는 올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투표권은 없지만 “나와 동료들 모두 금리인상과 인하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인플레이션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며 “에너지 가격 충격을 넘어서는 광범위한 물가 압력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Fed는 지난 4월 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당시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연은 총재를 비롯해 베스 해맥(클리블랜드), 로리 로건(댈러스) 등 지역 연은 총재 3명은 금리 동결 결정에는 찬성하면서도 ‘다음 조치가 금리인하일 가능성이 높다’는 취지의 표현에는 반대 의견을 냈다. 당시 FOMC는 기준금리 동결 후 낸 정책 결정문에서 향후 정책 방향을 언급하면서 “연방기금금리(기준금리) 목표 범위에 대한 추가 조정의 정도와 시기를 고려하는 데 있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 표현에 반대한 이들 3명의 연은 총재들은 다음 정책 방향이 금리인하일 수도, 인상일 수도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FOMC, 금리인하 기대감 차단
Fed는 2024년 9월 금리인하 사이클을 개시하고서 최근 3연속 금리 동결을 결정하기까지 줄곧 정책 결정문에 ‘추가 조정’이라는 표현을 관용적으로 사용해왔다. 카시카리 총재는 이 표현을 두고 FOMC가 다음번 금리 조정을 인하로 생각한다는 일종의 선제 안내(forward guidance)에 해당한다고 지적하면서 “최근 경제 및 지정학적 상황 전개와 전망에 대한 높은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이 같은 선제 안내는 현시점에서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해맥 총재도 반대 입장을 낸 배경을 설명하는 성명을 내고 ‘추가 조정’ 문구에 대해 “이 선제 안내는 금리인하 사이클의 종료가 아닌 (인하의) 일시적 중단을 시사하기 위해 포함된 것”이라며 “현재 전망을 고려할 때 이처럼 명확한 완화 편향은 더는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는 “인플레이션 압력은 광범위하게 지속되고 있으며 유가 상승이 추가적인 인플레이션 압력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경제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은 높아진 상태로 인플레이션에 대한 상방 위험과 성장·고용에 대한 하방 위험이 공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란전이 바꿔놓은 인플레 전망
FOMC 위원들이 이처럼 매파적 동결 의견을 내놓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이란전이다.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이 글로벌 경제의 최대 아킬레스건인 인플레이션 전망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단순히 유가 상승이라는 단기적 변수를 넘어 에너지 인프라의 물리적 파괴와 이에 따른 복구 지연이 물가 구조를 ‘고비용 저효율’ 체제로 재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가 과거의 유가 급등과 궤를 달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에너지 생산 및 송출 설비의 물리적 타격에 있다. 정유 시설과 송유관 등 핵심 인프라는 정밀 부품과 특수 공법이 집약된 장치 산업이다. 전쟁으로 파괴된 설비를 복구하는 데는 막대한 자본뿐 아니라 ‘시간’이라는 절대적 변수가 소요된다.

인프라 붕괴는 물류 경로의 경직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기존 송유관 대신 유조선이나 육상 트럭 등 대체 운송 수단에 의존하게 되면서 물류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여기에 파괴된 시설 재건을 위한 리스크 프리미엄(보험료 및 자본 비용 상승)이 더해지며 에너지 생산 단가 자체가 이전보다 높은 수준에서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에너지 비용은 산업 전반으로 전이되는 중이다. 전력을 대량 소비하는 석유화학, 비료, 철강 등 중간재 산업의 가동률 저하는 최종 소비재 가격을 밀어 올리는 연쇄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비료 가격 상승은 글로벌 식량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며 저소득 국가의 경제적 고통을 가중하는 실정이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경제 주체들의 심리적 변화다. 인프라 복구 지연 전망은 대중에게 “고물가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준다. IMF와 주요 투자은행(IB)들은 이란발 인프라 충격이 장기화할 경우 글로벌 물가상승률이 기존 전망치보다 2%p 이상 추가 상승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에너지 인프라의 ‘물리적 복원력’이 회복되지 않는 한 금리인하를 통한 경기부양책은 당분간 시장의 기대치를 밑돌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인플레, 트럼프의 정치적 부담으로
미국의 인플레이션 상황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부담이다. 이란 전쟁 장기화에 따른 유가 급등과 생활비 부담으로 지지율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어서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휘발유 가격 상승은 물가상승 압력으로 이어지며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에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5월 3일 워싱턴포스트(WP)가 ABC뉴스, 여론조사기업 입소스와 함께 4월 24~28일 성인 25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오차범위 ±2.0%p)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62%에 달해 1·2기 임기를 통틀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세부적으로 이란 전쟁을 둘러싼 트럼프 대통령의 대처에 대해 응답자의 66%가 반대 의사를 표했다.

하지만 백악관이 유가를 낮추기 위해 쓸 수 있는 정책 수단은 제한적이다. 5월 1일 기준 미국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4.39달러로 이란전 개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일주일 전보다도 30센트 이상 오른 수치다. 글로벌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해협 봉쇄 상태가 지속되는 한 유가가 추가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에 백악관은 급등하는 휘발유 가격을 완화하기 위해 연방정부가 활용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을 검토하고 있으나 지금까지 동원된 조치들은 효과가 제한적이며 남은 선택지 역시 재정적·정치적 부담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과 종전 협상을 물밑에서 서두르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11월 중간선거를 6개월 앞둔 공화당 내부에서 명확한 출구전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서다. 중동 분쟁에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면서 미국 중산층의 대출금리 기준이 되는 10년물 국채금리도 급등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도 부담이다.

공화당 핵심 인사들도 잇따라 트럼프 행정부에 종전 압박을 가하고 있다. 재선 도전을 앞둔 수전 콜린스(메인주) 상원의원은 지난 4월 30일 전쟁 중단 결의안에 민주당과 함께 찬성표를 던지며 “60일 시한은 제안이 아니라 필수 요건”이라며 “분쟁 종식을 위한 명확한 임무와 달성할 수 있는 목표, 전략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뉴욕=박신영 한국경제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