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사가 13일 새벽까지 이어진 사후조정에서도 '성과급 제도화'를 둘러싼 입장 차를 끝내 좁히지 못하면서 협상이 최종 결렬됐다. 이에 따라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다만 노동당국은 현재로선 이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라 실제 발동 여부를 둘러싸고 전망이 엇갈린다.
○긴급조정권이란?긴급조정권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76조에 근거한다. '쟁의행위가 공익사업에 관한 것이거나 그 규모가 크거나 그 성질이 특별한 것으로서 현저히 국민경제를 해하거나 국민의 일상생활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현존하는 때'에는 고용노동부 장관이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의 의견을 들어 발동할 수 있다.
장관은 긴급조정을 결정하면 이를 공표하는 동시에 중앙노동위원회와 관계 당사자에게 각각 통고해야 한다.
긴급조정이 발동(공표)되면 공표일로부터 30일간 쟁의행위가 금지된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장관으로부터 통고를 받은 즉시 조정 절차를 개시한다. 이 과정에서 중앙노동위원회는 '조정이 성립할 가망이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엔 공익위원의 의견을 들어 사건을 '중재'에 회부할 수 있다. 중재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쟁의행위는 제한된다.
중앙노동위원회의 중재재정은 '단체협약'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노사 어느 쪽도 동의하지 않아도 강제 적용된다는 뜻이다. 긴급조정권이 강력한 파업 제동 카드로 꼽히는 이유다.
○과거 네차례 발동...제조업은 1993년 현대차가 유일긴급조정권이 발동된 사례는 과거 네 차례 있었다. 1969년 대한조선공사 파업, 1993년 현대자동차 파업, 2005년 7월 아시아나항공, 12월 대한항공 조종사 파업 등이다. 1969년 대한조선공사 파업은 긴급조정권의 첫 발동 사례다. 당시 파업으로 수출용 선박 납품이 지연될 우려가 커지면서 정부는 수출 차질과 국민경제 피해 가능성을 이유로 긴급조정권을 발동했다.
민간 대기업 제조업에 발동된 사례는 1993년 현대차가 유일하다. 당시 현대차 노조는 정부의 임금가이드라인 정책에 맞서 현대중공업 등 계열사 노조들과 함께 연대파업을 벌였고, 정부는 같은해 7월 긴급조정권을 발동했다. 이후 노사 양측은 기본급 인상에 합의했다. 당시 현대차 노조는 72일 동안 22차례 파업을 벌였다.
마지막 발동 사례는 2005년 대한항공 조종사 파업이다. 수송 차질에 따른 직접 피해와 관광업계·수출업계 피해, 항공기 결항에 따른 국민 불편이 커지면서 긴급조정권이 발동됐다.
2016년에는 현대차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당시 정부가 11년 만에 긴급조정권 발동을 검토한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실제 발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만약 삼성전자 파업에 긴급조정이 실제로 발동된다면 21년 만이다.
○초기업노조 주도 총파업 처음...파급효과 우려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가 경제적 파급력을 고려하면 긴급조정권 발동 요건은 충분히 갖춘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조업 차질이 국가 경제와 글로벌 공급망에 미칠 수 있는 파급효과를 고려하면 긴급조정 요건이 충족된다는 의견이다.
반면 실제 긴급조정권 발동까지 이어지려면 현실적인 생산 차질과 국민경제 피해가 가시화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단순한 교섭 결렬이나 파업 예고만으로는 발동 명분이 약하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에서 발생한 첫 파업은 2024년 5월이다. 당시 최대 노조였던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주도했지만 실제 생산 차질은 크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교섭을 주도하고 있는 초기업노동조합이 진행하는 총파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초기업노조는 삼성전자 창사 이래 첫 '단일 과반노조'다. 노조에 따르면 조합원은 7만3000명 수준이고, 파업 참여 예상 인원도 최대 4만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돼 2024년 파업과는 파급력이 다를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글로벌 투자은행(IB) JP모건은 최근 보고서에서 파업 장기화 시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이 최대 40조원 넘게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AI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 경쟁이 치열한 시점에 발생할 생산 차질은 고객사 신뢰도와 납기 일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계와의 관계를 중시해온 현 정부 입장에선 긴급조정권 발동 자체가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노동위원회 관계자는 교섭 결렬 직후 "긴급조정권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 적절한 시기에 다시 사후조정 가능성을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초기업노조가 강경한 입장을 밝힌 데다, 파업 국면이 장기화할 경우 입장이 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노조가 예고한 파업 시작일은 오는 21일이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