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Drone)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수벌'이라는 뜻이 가장 먼저 나온다.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그 작은 곤충 말이다.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첨단 무인 비행체와는 어울리지 않는 어원이다. 그런데 이 어색한 이름에는, 의외로 드론 산업의 시작점이 선명하게 담겨 있다.
1935년 1월, 영국 항공기 제조사 데 해빌랜드(de Havilland)가 'Queen Bee', 즉 여왕벌이라는 이름의 무선 조종 무인 비행체를 처음 띄웠다. 영국 공군과 해군이 도입해 운용한 이 기체는 대공포 사수들의 사격 훈련을 위한 표적기였다. 그리고 그해, 시연을 참관한 미국 해군 제독이 본국에 돌아가 미국판 개발을 지시하며, 영국식 작명에 대한 오마주로 'Drone(수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왕벌을 따라다니는 수벌처럼, 조종사를 따라 움직인다는 의미였다.
2차 세계대전이 본격화되면서 연합군에게는 골치 아픈 문제가 하나 있었다. 빠르게 날아오는 적기를 격추할 대공포 사수들을 어떻게 훈련시킬 것인가. 실제 항공기를 띄워 표적으로 쓸 수는 없었고, 정지된 표적은 실전 감각을 익히는 데 부족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무인 비행체였다. 사람을 태우지 않은 채 하늘을 날고, 격추돼도 인명 피해가 없는, 그야말로 소모품으로 설계된 비행체. 그것이 드론의 출발이었다. 다시 말해, 드론의 첫 직업은 '맞기 위한 비행체'였다.
이 출발점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드론이 90여 년의 세월을 거쳐 정찰, 폭격, 배송, 촬영, 농업, 측량까지 그 영역을 넓혀온 지금까지도 산업의 깊은 곳에는 이 'DNA'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바로 '사람이 타지 않는다'는 전제. 그리고 그 전제 위에 세워진 '안전에 대한 다른 기준'이다.
유인 항공기 한 대가 하늘에 뜨기 위해서는 수많은 절차를 거친다. 수백 페이지의 정비 매뉴얼과 정해진 점검 주기, 자격을 갖춘 정비사, 그리고 인증된 부품의 이력 추적까지 모든 것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유는 조종사와 수십 명의 승객 목숨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공 산업은 지난 100년 동안 비행 기술만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사고를 줄이기 위한 관리 체계를 함께 발전시켜왔다.
반면 드론은 달랐다. 사람을 태우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가벼운 안전 체계 위에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상자를 열고 배터리를 끼운 뒤 바로 하늘에 띄웠고, 산업 현장에서도 운용자가 매뉴얼을 보고 육안으로 점검하는 방식이 오랫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이 가벼움은 드론 시장을 빠르게 키운 원동력이었다. 동시에 지금의 드론 산업이 마주한 가장 큰 숙제가 되었다.
상황은 바뀌었다. 드론은 더 이상 외진 훈련장이나 제한된 작전 구역 안에서만 날지 않는다. 도심 배송, 의약품 운송, 시설 점검을 위해 드론은 이제 인구 밀집 지역의 상공을 지난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드론 산업은 빠르게 커졌지만, 그에 맞는 점검과 정비 체계는 충분히 따라오지 못했다. 기체가 작고 가격이 낮다는 이유로, 혹은 사람이 타지 않는다는 이유로, 드론의 상태를 확인하는 일은 여전히 운용자의 경험과 눈에 맡겨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드론이 수행하는 임무가 중요해질수록 이 방식은 한계에 부딪힌다. 모터의 미세한 이상, 배터리의 불안정성, 블레이드의 균형 문제, 통신 장치의 오류는 육안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작은 이상이 비행 중에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드론 산업의 본질은 이제 '날 수 있는가'에서 '안전하게 반복 운용할 수 있는가'로 이동하고 있다. 기술적으로 비행이 가능하다는 것과 산업적으로 운용 가능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비행은 한 번의 성공으로 증명될 수 있지만 산업은 수천 번의 반복 속에서도 안정성을 유지할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
AAM, 즉 미래항공모빌리티 논의도 이 지점에서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에어택시가 하늘을 나는 장면은 많은 사람에게 미래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미래가 실제 도시의 교통수단이 되려면 더 중요한 질문에 답해야 한다. 그것은 결국 무인기 시절부터 풀지 못한 숙제, 즉 '사람이 타지 않는 기체'를 어떻게 신뢰할 것인가의 문제로 되돌아온다.
사람이 타지 않는다는 전제로 만들어진 기체에, 100년의 항공 정비 표준을 어떻게 이식할 것인가. 매뉴얼만 두꺼워진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드론은 유인 항공기처럼 한 대가 천천히 이/착륙하는 기체가 아니라, 수십 수백 대가 짧은 주기로 운용되는 기체다. 사람이 일일이 점검할 수 있는 규모를 한참 벗어나 있다. 그래서 드론 산업의 정비는 처음부터 자동화된 형태로 설계되어야 한다. 사람의 손이 아닌, 데이터와 AI의 눈으로.
드론의 출발은 표적기였다. 임무가 끝나면 사라져도 되는 훈련 도구에 가까웠다. 그러나 지난 90년 동안 드론은 '맞기 위한 비행체'에서 '사람의 생활권 위를 지나는 비행체'로 이동해왔다. 지금 우리가 만들고 있는 드론은 산업 현장, 전장과 물류망을 잇는 인프라가 되어가고 있다.
문제는 더 이상 기체 한 대의 손실이 아니다. 드론의 실패는 사람과 도시, 그리고 산업 전체의 리스크가 된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변화에 걸맞은 안전 체계다. 더 오래 날고, 더 멀리 가고, 더 많은 임무를 수행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산업으로서의 드론은 결국 얼마나 안전하게 관리되고, 얼마나 신뢰할 수 있게 운용되는가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항공 산업이 1세기에 걸쳐 가르쳐준 교훈이다.
김의정 위플로 대표이사는 유도비행시스템과 자율주행 센서 설계를 연구해온 미래 모빌리티 기술 전문가다. KAIST에서 정보통신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LG전자 CTO 스마트카 연구소와 한화시스템 미래기술랩 UAM Part에서 자율주행·미래항공모빌리티 기술을 연구했다. 2022년 한화시스템 사내벤처로 위플로를 창업해, 드론과 AAM이 안전하게 운용될 수 있는 예지정비 AI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