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데이터처의 원유(가공 전 우유) 생산비 발표를 앞두고 우유업계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생산비 상승률이 일정 기준을 넘어서면 원유 기본가격 협상이 시작돼 우윳값 인상 논란이 다시 불거질 수 있어서다. 원유 쿼터 대부분이 음용유에 묶여 있는 현행 수급 구조도 업계의 부담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12일 유업계와 유가공업계 등에 따르면 국가데이터처는 이달 국내 원유 생산비를 발표할 예정이다. 현행 제도상 2025년 생산비가 마지막 조정 기준 대비 4% 이상 오르면 원유 기본가격 조정 협상이 열린다. 지난해 발표된 2024년 우유 생산비는 L당 1018.19원으로 전년 대비 1.5% 상승해 협상이 열리지 않았다. 올해도 생산비 상승률이 4%를 밑돌면 가격 협상은 열리지 않는다.
다만 가격 협상 여부와 무관하게 음용유와 가공유 비중을 조정하는 물량 협상은 예정대로 열린다. 올해 협상 결과는 2027~2028년 원유 배분 기준에 적용된다. 현재는 음용유가 전체 쿼터의 88.5%를 차지하고 가공유가 5%다. 음용유에는 흰우유와 딸기·초코·바나나우유 등 가공시유, 멸균유, 발효유 등이 포함된다. 가공유는 전지분유와 탈지분유, 치즈, 아이스크림, 연유, 조제분유 등을 만드는 원료용 원유다.
문제는 이 배분 구조가 소비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점. 국내 흰우유 소비는 계속 줄고 있다.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국내 1인당 흰우유 소비량은 2021년 26.6㎏에서 지난해 22.9㎏으로 떨어져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장기 보관이 가능한 수입 멸균우유는 빠르게 늘고 있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 기준 지난해 멸균우유 수입량은 5만740t으로 4년 전(2021년)에 비해 119% 증가했다.
수입산의 가격 경쟁력은 더 강해질 전망이다. 미국산 우유는 올해부터 관세가 0%로 낮아졌고, 유럽산 우유도 7월부터 관세가 철폐된다. 이미 국내 원유 가격은 주요 낙농 국가보다 높은 수준이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원유 가격은 L당 1246원으로 미국, 폴란드 등보다 1.7~2배가량 비싼 것으로 알려졌다. 소비자들이 가격 부담에 국산 우유를 외면할 뿐 아니라 유업체들도 국산 원유를 사용할수록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구조에 놓인 셈이다.
유업계가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부분은 남는 원유다. 개별 기업들이 다 소화하지 못한 원유는 전지분유나 탈지분유 등으로 가공된다. 원유는 장기간 보관이 어렵기 때문에 분말 형태로 바꿔 저장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도 해법이 되진 않는다. 업계 관계자는 "업체마다 처치 곤란인 원유를 건조해 원료용 분유를 만들지만, 그 순간 적자로 시작하는 셈"이라며 "수입산을 쓰는 것이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업계에 따르면 국산 탈지분유 가격은 kg당 1만3000~1만4000원 수준이지만 수입 분유는 kg당 4500~5000원 수준에 불과하다. 국산 원유를 분유로 전환하더라도 가격 경쟁력이 밀리기 때문에 재고만 쌓여가는 구조다. 다른 유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만든 분유는 어디다 팔 수도 없기에 자체적으로 소진해야 하는 물량"이라며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 분유 재고도 7100t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는 원유로 환산하면 7만t 안팎에 달하는 규모다.
잉여 원유와 고원가 구조는 유업체 수익성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서울우유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438억원으로 전년 대비 23.6% 감소했고 매일유업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14.7% 줄어든 600억원에 그쳤다. 남양유업 영업이익은 51억원, 2024년에는 98억원 적자를 내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비싼 가격으로 인해 소비자가 외면하고, 팔리지 않는 원유를 개별 업체들이 떠안아 다시 가격 경쟁력이 낮은 분유로 만들어 쌓는 악순환을 끊으려면 음용유 중심의 배분부터 손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낙후된 국내 낙농 구조도 크게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낙농가의 생산 기반을 보호하고자 원유 가격에 생산비 증감분을 반영해왔지만, 그에 걸맞은 생산성 개선은 없었다는 지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원가부터가 너무 비싼 게 문제"라며 "수입 사료 의존도가 높은 고비용 구조인데다가 국내 목장당 일평균 생산량도 0.9t 수준으로 미국, 호주 등에 크게 못 미친다"고 꼬집었다. 이어 "기존 제도의 적정성을 검토해 스마트팜, 목장의 대형화, 수입 사료 의존도 축소 등 생산성 향상을 유도해야 한다"며 "지금과 같은 상황이면 B2B(기업간거래) 채널도 수입산에 넘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