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낸 것처럼 무리 지어 우르르"…민폐 러너에 시민 '분통'

입력 2026-05-11 06:53
수정 2026-05-11 06:57


"공원이 러닝 크루들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잖아요. 뛰고 싶으면 사람 없는 곳으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8일 오전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만난 직장인 박모 씨(34)는 러닝 크루에 관해 묻자 이같이 말했다. 그는 "운동하는 건 좋은데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불편을 끼치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날씨가 풀리면서 러닝 크루 문화가 또 도마 위에 올랐다. 그간 각 지자체에서 러닝 크루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제재에 나섰으나, 매년 속수무책으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공공장소 점령·함성·쓰레기 투기 등 민폐 행위가 반복되면서 비러닝 크루 시민들의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 공원 점령·함성에 시민 불만 잇따라

이날 여의도공원에서 만난 시민들은 무리 지어 뛰는 러닝 크루로 인한 불편을 토로했다. 직장인 곽모 씨(32)는 "인원이 많은 크루가 좁은 길을 점령하고 지나가면 위협감을 느낄 때가 많다"며 "소리를 지르며 몰려다니는 탓에 조용히 쉴 공간마저 빼앗긴 기분"이라고 언급했다.

일부 자치구에서는 러닝 크루에 대한 제재에 나섰다. 서초구는 지난해 10월부터 반포종합운동장 트랙에서 5인 이상 단체 달리기를 제한하고 인원 간 2m 간격을 유지하도록 하는 규칙을 시행 중이다. 송파구는 석촌호수 산책로에 '3인 이상 러닝 자제' 안내문을 게시했고, 성북구는 성북천 인근에 '우측 보행·한 줄 달리기'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날 여의도공원 입구에도 러닝 크루를 겨냥한 안내판이 설치돼 있었다. 무리 지어 달리는 행위·웃옷을 벗고 달리는 행위·박수 및 함성·보행자에게 비켜달라고 외치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하단에는 '서로를 배려하며 2열로 안전하게 달립시다', '여긴 모두의 공원입니다'라는 문구도 적혀 있다.◇ 연예인·SNS까지 번진 러닝 크루 비판 여론

최근 관련 논의에 불을 지핀 것은 힙합 그룹 에픽하이다. 이들이 러닝 크루 문제를 비판한 영상 조회수는 75만회를 기록할 정도로 큰 관심을 끌었다. 지난달 30일 유튜브 채널 '에픽하이'에 업로드된 영상에서 멤버 타블로는 "러닝을 하든 자전거를 하든 상관없는데 무리 지어 다니지 좀 마라"고 규탄했다.

이어 멤버 투컷은 "건전한 취미를 함께하기 위해 모인 거 아닌가. 본래 목적에만 충실해야 하는데 인도를 다니는 분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거들었다. 미쓰라진도 "건강을 위해 뛰는 건 좋지만 왜 모여서 담배를 피운 후 꽁초를 버리고 뛰냐"고 비판했다.

이후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대체로 러닝 크루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한 누리꾼은 "소규모로 안전하게 한 줄로 뛰면 사람들도 뭐라고 안 한다"고 적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종합운동장에서 워크런 뛰는 사람들은 아예 전세 낸 것처럼 모든 트랙을 점령하고, 천연잔디에 들어가 사진을 찍거나 쓰레기를 무단 투기한다"고 짚었다.◇ "좋은 일 하는 러닝 크루도 많다" 러닝 크루 전체를 싸잡아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직장인 러닝 크루에 정기적으로 참가한다는 김모 씨(35)는 "크루 활동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 때문에 우리 전체가 욕을 먹는 것 같아 억울하다"며 "우리 크루는 달릴 때마다 쓰레기를 줍고, 행사가 끝나면 항상 주변을 깨끗이 치우고 나온다"고 토로했다.

실제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뜻을 모아 선행을 실천하며 긍정적 이미지를 쌓은 민간 러닝 크루도 적지 않다. 기부 러닝을 선도해 온 민간 러닝 크루 '유콘'은 매달 회원이 달린 거리 1km당 400원씩을 자체적으로 모금해 아동보호센터 등에 전액 기부하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서울 내 대학 러닝 크루들이 연합해 주최한 플로깅(Plogging·조깅하면서 쓰레기 줍기) 행사에서는 참가 대학생들이 올림픽공원에서 뚝섬유원지 구간을 달리며 플로깅을 하고 참가비 전액을 기부하기도 했다.

러너 이모 씨(24)는 "러닝 크루 하면 민폐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데, 주변을 보면 플로깅과 기부런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크루가 생각보다 훨씬 많다"며 "그런 활동이 더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 해법 마련 시급

커지는 갑론을박에 해법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확산하고 있다. 현재 러닝 크루를 규제하는 방법이 마땅치 않은 데다 자치구마다 계도 기준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실제 성북구는 한 줄 달리기를 안내하고, 일부 다른 자치구는 두 줄 달리기를 권고하고 있다.

시민들 사이에서도 통합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일반 러너인 황모 씨(26)는 "안내문을 무시하고 뛰는 무리를 매일 본다"며 "단순한 권고 수준이 아니라 벌칙 조항이 동반돼야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는 적극적인 계도가 현실적이라고 분석했다.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공익 및 윤리적 차원에서 적극적인 홍보와 계도 행정 지도를 통해 시민 의식에 호소하는 방향이 맞다"고 제시했다.

한편 정치권도 최근 러닝 크루 논의에 합세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마라톤 전용 코스 조성을 당 차원의 생활 밀착형 공약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정 대표는 "현장을 다녀보니 마라톤 동호회 회원들의 민원이 많다"며 "마라톤 대회를 하면 대로를 막고 교통을 통제하는데, 평소 동호회원들은 산책길이나 자전거길을 이용하다 보니 사고 위험과 불편함이 크다는 호소였다"고 했다. 실제 공약으로 이어질 경우, 러닝족과 비러닝족 간 논쟁이 확산될 전망이다.

이정우 한경닷컴 기자 krse905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