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할증료 급등으로 항공권 가격 부담은 커지고 있지만 항공사들의 고객경험(Customer Experience·CX) 투자는 오히려 확대되는 분위기다. 가격 인상을 방어하기보다 ‘비싼 값을 지불할 이유’를 스스로 만들겠다는 역발상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이달 발권분부터 국제선 유류할증료는 최고 단계인 33단계가 적용되면서 항공권 가격 부담이 크게 커지고 있다. 중동전쟁 리스크로 국제 유가가 급등한 여파다. 대한항공의 뉴욕·보스턴 등 장거리 미주 노선 유류할증료(편도 기준)는 3월 9만9000원에서 이달 들어 56만4000원으로 5배 이상 뛰었다.
운임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 글로벌 항공사들의 경쟁 축은 가격보다 경험으로 이동하고 있다. 단순히 저렴한 항공권을 내세우기보다 고객경험을 강화해 '비싸도 선택받는 항공사'가 되겠다는 것이다.
대한항공은 인천국제공항 라운지 경쟁력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프리미엄 수요 확대에 맞춰 공항 라운지를 단순 대기 공간이 아닌 체류형 경험 공간으로 재설계한다는 취지다. 대한항공은 최근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라운지 개편 과정에서 즉석 조리형 식음 서비스와 가족 단위 이용객을 위한 공간 강화에 집중했다. 탑승 전 시간을 여행 경험의 일부로 만들겠다는 포석.
글로벌 항공 동맹들도 프리미엄 거점 확대에 나서고 있다. 스타얼라이언스는 최근 중국 광저우 공항 내 신규 라운지를 선보이며 아시아 허브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기내 서비스 역시 빠르게 고도화되고 있다. 항공사들은 장거리 비행 과정에서 승객이 느끼는 피로와 불편을 줄이기 위해 디지털 안내 서비스와 프리미엄 편의 요소를 강화하는 추세다.
에어프레미아는 기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통해 비행 정보와 서비스 일정을 보다 직관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저비용 항공사(LCC)들도 단순 저가 전략에서 벗어나 프리미엄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파라타항공은 소니와 손잡고 인천~푸꾸옥, 다낭 노선 비즈니스 스마트 클래스 승객에게 최신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한 달간 제공한다. 고객 반응을 수렴한 뒤 전체 노선으로 확대를 검토 중이다. LCC의 전통적 무기였던 저가보다 고객 경험을 앞세우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글로벌 항공사들의 움직임은 더욱 적극적이다. 미국 델타항공은 인공지능(AI) 기반 맞춤형 여행 안내 서비스를 확대하며 환승 정보와 탑승 동선 안내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내 일부 노선에서는 유명 햄버거 브랜드 쉐이크쉑 메뉴를 제공하는 등 외식 브랜드와 협업한 기내식 마케팅도 확대하는 추세다.
중동 항공사들의 투자 규모는 압도적이다. 에미레이트항공은 대규모 기내 개조 프로젝트로 프리미엄 이코노미 확대, 최신 기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도입, 신규 기내식 강화 등에 투자하고 있다. 두바이공항에서는 퍼스트·상위 멤버십 고객을 위한 전용 체크인 서비스도 강화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여행 소비 패턴이 바뀌고 있다는 점도 이런 흐름에 힘을 싣고 있다. 단순히 저렴하게 이동하는 것보다 얼마나 편안하고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받느냐를 중시하는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항공사들은 기내, 공항 서비스를 단순한 이동의 부속물이 아니라 여행 전 과정을 구성하는 하나의 소비 경험으로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AI 기반 맞춤형 서비스, 웰니스, 몰입형 콘텐츠 등과 결합한 프리미엄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타사 대비 부족한 기내 서비스 강화에 그치지 않고 고객 만족도 확대를 위한 경쟁이 더 심화할 것"이라며 "유류할증료 인상으로 전체 비용 부담이 늘어난 만큼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서비스 가치의 중요성도 함께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용현 한경닷컴 기자 yong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