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와인 랩소디 <69>
‘와인을 감상하고 예술을 맛보다’.
‘아트인더글라스 그랜드 테이스팅’(와인 수입사 와이넬 주관)의 슬로건이다. 매년 열리는 이 행사의 목표는 와인과 예술의 미각·시각적 패턴을 정서적으로 결합하는 것. 올해는 열두 번째로 지난 4월 28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서울호텔 아트리오에서 열렸다.
올해 테마 와인으로 선정된 ‘바타시올로(Batasiolo)’는 이탈리아 피에몬테 랑게 지역의 대표적인 가족경영 와이너리다. 브리콜리나, 체레퀴오 등 바롤로 5대 핵심 지역을 포함해 모두 156헥타르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다. 국내 시장에는 와이넬이 수입, 독점 공급하고 있다.
공모전에서는 섬유조형 예술가로 유명한 케일리 킴의 ‘바타시올로 바롤로(Batasiolo Barolo)’가 영광을 차지했다. 작가는 모두 발언에서 “150대 1의 경쟁을 뚫고 선정됐다. 바롤로 와인의 시간과 깊이에서 작품의 영감을 받았다. 감각과 기억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시음회에는 와인업계 관계자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번 행사에는 바타시올로, 판티니, 비비 그라츠 등 이탈리아 유명 와인 외에도 프랑스, 미국 등 와이넬이 수입하고 있는 전체 브랜드(132종)가 모두 출격했다. 시음 와인 종류가 하도 많아 담당자 도움을 받았다. 그중 3개 와인을 엄선해 맛과 향을 소개한다.
먼저 시음부스 맨 앞 열에 배치된 바롤로를 살펴봤다. 네비올로(이탈리아 토착 포도 품종 중 하나) 100%로 만든 바롤로는 소비자의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스타일에 따라 다소 차이는 나지만 최소 10년 이상 기다려야 본래 모습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이번 행사 참가차 방한한 안드레아 크라베로(바타시올로 수출 매니저)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는 산도와 타닌이 다소 부드러운 ‘바타시올로 바롤로, 브루나테(2012)’를 추천했다. 밝은 오렌지 분위기가 감도는 가넷 컬러 속에 세월의 흔적이 담겨 있다. 첫 모금에서 신선한 제비꽃 향과 함께 매끄러운 벨벳 질감이 편하게 다가왔다.
오랜만에 고향집을 방문한 느낌이다. 한풀 꺾이기는 했지만 단단한 산도와 타닌감은 여전히 살아남아 춤추고 있었다. 전형적인 바롤로 와인의 특성이다. ‘음용 온도는 섭씨 18~20도로 높은 편’이라고 안드레아는 덧붙였다.
다음은 판티니그룹의 ‘비네티 델 살렌토, 더원(Vigneti del Salento, The One 2025)’. 깊은 퍼플 컬러의 첫인상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어 상큼하고 달콤한 야생 베리 아로마가 단박에 잡혔다. 풀보디 와인으로 두 번째 잔부터는 발사믹과 바닐라 향이 서서히 나타났다. 포도 품종 프리미티보(60%)와 네그로아마로(40%)를 섞어 양조했다.
판티니 수출 매니저는 “더원의 알코올 도수는 15.5도에 달한다. 늦은 수확과 포도알의 농축 효과 때문이다. 이 점은 부드러운 맛과 미네랄리티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연간 한국 시장 수출은 2만 병 정도라고.
끝으로 피노 누아 와인 두 종류를 놓고 망설였다. 원래는 미국 오리건 피노 누아를 소개하려고 했으나 개성 강한 ‘얼스(흙, 젖은 낙엽 등 묵직한 향)’ 느낌이 제동을 걸었다. 결국 프랑스 부르고뉴 피노 누아인 도멘드라 코바렌의 ‘클로 드 라 코마렌’에 잔을 내밀었다. 포마르 지역 프리미에 크뤼 등급인 이 와인의 상큼하고 우아한 맛과 향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위대한 예술가 곁에는 항상 와인이 있었다고 한다. 숙명과도 같은 인간의 한계 때문일까. 절연 위기 때마다 와인은 늘 ‘범상치 않은 영감’을 주어 작품 활동을 이어가게 도왔을 것이다.
‘예술과 와인’을 생각한다. 집 안 한편에 묵혀둔 미술 작품을 꺼내 와인 한잔하며 새롭게 감상하는 것은 어떨까? 눈부신 봄날을 와인과 함께.
김동식 와인 칼럼니스트,
국제와인전문가(WSET Level 3)
juju43333@naver.com
<사진 설명>
바타시올로 바롤로, 브루나테(2012)
비네티 델 살렌토, 더원(2026)
도멘드라 코바렌, 클로 드 라 코마렌(2021)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