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대륙 곳곳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강제 동원됐다는 증언이 나온다. 경호원, 주방 보조 등 일자리를 약속받고 러시아로 향했지만, 도착 후 전장 한가운데로 끌려가는 식의 피해가 적지 않았다. 계약서가 러시아어로 작성돼 있어 아프리카인이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일자리를 약속받은 뒤 전쟁에 강제 동원되는 아프리카 남성이 늘고 있다. 케냐 국적의 제임스 카마우 은둔구는 러시아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게 될 것이란 설명을 듣고, 이스탄불 공항을 경유해 러시아로 향했다. 몇 주 뒤 카마우가 친구들에게 보낸 사진에는 군복을 입고 총을 든 그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는 지난해 8월 우크라이나 참호 안에 있다는 메시지를 남긴 뒤 연락이 끊겼다.
일부 아프리카인은 자발적으로 용병에 지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상당수는 카마우처럼 평범한 민간 일자리를 제안받은 뒤 전장으로 끌려간다.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는 이 같은 수법으로 남성을 모집하기 위한 임시 회사들이 세워졌다. 여행사나 취업 알선 업체로 위장한 뒤 와츠앱과 텔레그램을 통해 광고를 내보낸다.
NYT에 따르면 이들 모집책은 모스크바 국방부와 직접 연결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아프리카인이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도록 러시아어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아프리카에서는 정규직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해외 취업 약속은 거절하기 어려운 유혹이다. 세계에서 청년 인구가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청년 실업률이 높다는 얘기다. 취업이 간절한 만큼 취업의 탈을 쓴 강제 동원 모집에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케냐 국가정보국은 약 1000명의 케냐인이 러시아로 갔다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동원된 것으로 보고 있다. 살아 돌아온 사람은 단 30명뿐이다. 케냐 정부는 이 같은 피해를 막기 위해 국제선 출국 심사를 강화했다고 밝혔다. 오코이티 앤드루 옴타타 케냐 상원의원은 “오늘 몸바사 항구에 ‘서방에서 노예 모집’이라고 적힌 노예선이 들어오면 그 배에는 자리가 남지 않을 것”이라며 청년들이 거짓 알선에 넘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케냐뿐 아니라 탄자니아, 잠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나이지리아, 가나, 토고, 보츠와나, 말리 등 총 9개 국가에서 피해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한 뒤 17명의 남아공인을 전선에서 빼내 올 수 있었다.
러시아는 외국인이 참전한 건 맞지만 강제 동원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지난 3월 러시아가 ‘특별 군사 작전’이라고 부르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외국인이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자원자들은 러시아 법률을 완전히 준수한 상태에서 그곳에 간 것”이라고 말했다.
케냐 국적의 빈센트 오디암보 아위티는 자기 경험을 NYT에 증언했다. 그는 러시아행 항공료를 지원받고 출국했다. 도착 후 러시아군 계약서에 서명하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거부했다. 하지만 항공료를 갚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을 듣고 그를 포함해 총 5명이 계약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지역의 전장에 투입됐다. 묻히지 않은 시신들이 전장 곳곳에 널려 있었고 강물에는 죽은 사람들이 ‘수련잎처럼’ 떠다녔다고 한다. 아위티는 사람들이 그곳을 ‘죽음의 지대’(The Death Zone)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그는 드론 공격을 받아 손과 엉덩이를 다친 뒤 모스크바 군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후 케냐 대사관을 거쳐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손주형 기자 handb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