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에 1000원"…사장님들 '청첩장' 사는 뜻밖의 이유

입력 2026-05-02 12:18
수정 2026-05-02 12:30
모바일 청첩장과 부고장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거래되고 있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실제로 참석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업자들이 축의금이나 부의금을 낸 것처럼 꾸며 비용 처리를 하려는 것이다. 청첩장에는 신랑·신부 이름과 사진, 예식장 위치와 시간이 담겨 있다. 부고장에는 상주 연락처, 가족관계, 계좌번호 등이 적혀 있는 경우가 많아 탈세뿐 아니라 개인정보 유출 위험도 커지고 있다.

2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지난달 16일 참여자 1400명 규모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는 "2025년도 청첩장이나 부고장 있으신 분 계신가요? 1건당 1000원에 삽니다. 1:1 채팅 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실제로 이 같은 방에서는 모바일 청첩장 한 장이 1000원, 부고장은 500원 안팎에 거래되고 있었다.

지난 1일 카카오톡 오픈채팅에서 '경조사 공유'를 검색하자 관련 방 18개가 확인됐다. 이름은 '경조사 정보 공유'였지만, 결혼식이나 장례식 참석자를 모으는 공간은 아니었다. 이곳에선 사업자등록을 한 사람들이 비용 처리에 필요한 청첩장·부고장 캡처본을 확보하려고 자료를 주고받거나 사고팔았다.

각 방에는 적게는 700명, 많게는 1400명가량이 참여해 있었다. 참여자들은 각자 보유한 청첩장과 부고장 사진을 올리며 ‘증빙 품앗이’를 했다. 특정 연도 자료를 구하는 글도 이어졌다. 일부는 무료로 자료를 공유했지만 판매를 목적으로 1대1 채팅 링크를 남겨 별도 거래를 유도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 방에는 한 달 동안 단 한 건의 경조사 정보도 올리지 않은 사람은 추방한다는 공지가 올라오기도 했다.

거래처나 고객 등 업무 관련자에게 낸 축의금·부의금은 세법상 업무추진비로 분류돼 일정 요건을 갖추면 비용 처리가 가능하다. 업무추진비는 사업과 관련 있는 외부 인원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쓰는 비용으로 접대·교제·사례 등 명목과 관계없이 폭넓게 인정된다.

문제는 이 제도를 악용해 실제 지출 여부나 사업 관련성이 확인되지 않은 청첩장과 부고장이 대량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것. 지난달 17일부터 말일까지 1400명 규모의 '경조사 청첩장 부고장 공유' 오픈채팅방에선 150건이 넘는 청첩장·부고장 사진이 공유됐다. 종합소득세 신고를 앞두고 부당한 증빙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진 셈이다.

한 이용자는 '2025년 경조사 정리'라는 제목의 압축파일을 무료로 공유했다. 해당 파일 안에는 300건이 넘는 청첩장과 부고장 사진이 있었다. '2025 경조사 청첩장 부고장 최저가 판매'라는 제목의 오픈채팅방 운영자에게 가격을 묻자 "구매하는 게 전혀 문제 되진 않는다. 수량에 따라 다르지만 800원에서 600원까지도 드리고 있다. 다른 분들은 1000원 정도 파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보통 매년 적게는 40장부터 100장, 400장까지 구매하신 분들도 많다"고 했다.

세무 전문가들은 비용 처리의 핵심이 사업 관련성이라고 지적한다. 일반 중소기업 기준 업무추진비 기본 한도는 3600만원. 여기에 매출액에 따른 추가 한도가 붙는다. 경조사비는 1회 지출액이 20만원 이하일 경우 신용카드 영수증이나 세금계산서 같은 적격증빙 없이도 비용 처리가 가능하다. 실무상 청첩장이나 부고장이 증빙으로 인정되는 이유다.

다만 본인 사업과 무관한 경조사 자료를 끌어다 비용 처리에 쓰면 문제가 달라진다. 사업과 관련 없는 경조사비를 지출했는데도 비용 처리를 할 경우 부당하게 세금을 줄이는 것이 된다. 경조사비 지출이 많으면 세무조사 과정에서 소명 요청을 받을 수도 있다.

이는 세금 문제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청첩장·부고장엔 당사자의 민감한 개인정보가 그대로 담겨 있어서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법조계에선 당사자 사진이 포함된 청첩장을 동의 없이 게시할 경우 인격권·초상권 침해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