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의금 대신 커피 한 잔…"4일 내내 결혼식 했어요" [발굴단]

입력 2026-05-03 13:10
수정 2026-05-03 14:23


지난달 25일 찾은 서울 종로구 숭인동 동묘앞역 근처에 있는 한 카페는 여느 커피숍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매장은 잘 차려입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곳곳에서 축하 인사가 오갔다. 카페 곳곳엔 온갖 빛깔의 꽃이 놓였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없었다면 지금 결혼식이 열리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카페 결혼식'은 이곳에서 지난달 24일부터 27일까지 열렸다. 이 카페의 주인장 커플이 자신의 업장에서 4일 내내 결혼식을 연 것이다. 식순도, 주례도 없었다. 하객은 축의금 대신 커피 한 잔만 주문하면 끝이다. 신랑·신부는 카페를 찾은 하객들과 입담을 나누며 함께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이게 예식의 전부였다.

결혼식 비용의 거품을 쏙 뺀 극단적인 '스몰 웨딩'을 찾는 커플이 늘고 있다. 정형화된 식순과 스타일대로 진행되는 '공장형 결혼식'을 따르는 대신 예비 부부들이 직접 결혼식을 설계하는 방식이다. 카페 결혼식도 스몰 웨딩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평균 결혼비용 '2139만원'…식대 10만원 넘기까지


예비 부부들이 스몰 웨딩을 찾는 이유중 하나는 갈수록 높아지는 결혼식 비용 부담이다. 한국소비자원의 '결혼서비스 가격 조사' 결과에 따르면 2월 전국 평균 결혼비용은 2139만원으로 지난해 12월 대비 2.3% 올랐다. 결혼비용은 예식장 계약금과 일명 '스드메(스튜디오 촬영·드레스·메이크업) 패키지 등을 합산한 금액이다.

고물가 여파로 이제 결혼식 식사비 10만원은 예사가 됐다. 코스식의 평균 가격은 11만9000원에 이른다. 예비부부는 하객이 낸 축의금에 더해 알뜰살뜰 모은 돈을 식사비를 포함한 하루 결혼식 비용으로 써야 하는 셈이다. 예비부부도, 하객도 부담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이날 카페 결혼식을 연 신부 오예지 씨(31)와 신랑 박남혁 씨(35)는 하객에게 식사를 대접하지 않았다. 그래서 축의금도 받지 않았다. 축의금은 커피 한 잔 값인 5000원이 전부였다.

박씨는 "오랜만에 동창들에게 연락해 결혼식에 와달라고 하는 순간 다들 '축의금을 얼마 내야 할까'란 고민에 빠진다"며 "불필요한 허례허식을 없애고 오직 지인들의 축하만 받기 위해 축의금 없는 결혼식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어 "내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3일 동안 결혼식을 연 덕분에 지인들이 각자 편한 시간에 방문해 축하해줬다"며 "30분 만에 끝나는 공장형 결혼식에선 경험할 수 없는 장점"이라고 했다.

4일간 결혼식 비용은 다 합쳐 400만원 정도였다. 스드메 비용은 평범한 옷으로 대신해 40만원으로 해결했다. 박씨는 "하객이 아니라 예비부부가 '카페 결혼식을 하고 싶다'며 대관이 가능한지 물어보기도 했다"며 "스몰 웨딩을 찾는 커플이 의외로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결혼식도 '의미 있는 소비의 대상'으로 보는 2030 늘어"한국 웨딩 산업을 분석한 <수상할만큼 완벽한 결혼식>을 쓴 이소연 작가는 "틀에 벗어난 결혼식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라며 "결혼과 결혼식에 대한 자신들의 기준에 들어맞을 때 이색 웨딩은 의미를 갖는다"라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2030을 중심으로 결혼식도 '의미를 찾는 소비'의 대상이 되면서 스몰 웨딩이 늘어나는 것으로 진단했다. 그는 "스몰 웨딩 수요 확대는 단순한 비용을 줄이기 위한 결과물로만 볼 수 는 없다"라며 "결혼식 자체도 의미 있는 소비로 생각하는 요즘 세대의 트렌드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 한국의 결혼식 문화가 스몰 웨딩 중심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이 작가는 전망했다. 그는 "요즘 젊은 세대 역시 나만의 결혼식을 기획하기 위한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는데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과시 소비'를 자랑하는 트렌드도 여전한 상황"이라면서도 "하지만 카페 결혼식 같은 작은 변화가 하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확산하면 언젠가 큰 불씨로 번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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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빈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