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과 정보가 과잉 공급되는 유통 환경에서 ‘선별’과 ‘신뢰’를 기반으로 한 소비 구조가 새로운 흐름으로 거론되고 있다. 최근 150호점을 달성한 우리동네국민상회는 소비자·점주·제조사를 연결하는 플랫폼형 유통 모델을 구축했다. 고객 주문 수량에 맞춰 발주하는 ‘무재고 운영’과 공급 당일 정산 시스템을 통해 재고 부담과 자금 리스크를 낮췄다. 이와 함께 소비 데이터를 기반으로 상품을 선별하고, 그 결과를 다시 운영에 반영하는 구조를 강화하고 있다. 회사는 이를 ‘4세대형 큐레이션 커머스’로 정의하고 있다.
변영민 대표를 만나 해당 모델의 차별성과 향후 전략을 들어봤다.
국민상회가 말하는 유통 경쟁력의 출발점은 무엇인가.
우리동네국민상회가 처음부터 고민한 것은 '공급업체가 가장 거래하고 싶어 하는 유통'이었다. 단순히 판매량을 늘리는 것보다, 거래 구조를 안정시키는 것이 더 본질적인 경쟁력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유통의 출발점을 판매력이 아니라 결제 신뢰에서 찾았다.
공급 당일 즉시 결제 시스템을 운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유통에서는 납품 후 수주에서 수개월 지난 뒤 정산이 이뤄진다. 그 사이 제조사는 자금 흐름을 예측하기 어렵고, 재고 부담과 금융 비용까지 떠안는다. 국민상회는 상품이 입고되는 즉시 대금을 지급한다. 거래는 판매량보다 신뢰에서 시작되고, 그 신뢰는 결제에서 만들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구조가 자리 잡자 공급업체 측에서도 현금 흐름이 안정되면서 생산 계획이 명확해졌고, 개선된 조건으로 신제품 제안이 먼저 들어오기 시작했다. 거래에서 출발한 관계가 결제를 통해 신뢰로 이어지고, 다시 더 좋은 상품과 가격 경쟁력으로 돌아오는 선순환이 형성됐다.
국민상회의 ‘무재고 시스템’은 기존 유통과 무엇이 다른가.
우리동네국민상회 운영의 또 하나의 특징은 재고를 떠안지 않는 구조다. 기존 유통은 팔릴지 모르는 상품을 먼저 매장에 쌓아두고 판매를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상품이 많을수록 선택지는 늘어나지만 동시에 폐기, 할인, 손실 가능성도 커진다.
국민상회는 고객이 주문한 수량만큼만 발주하고, 물류센터에서 통합 관리한 뒤 콜드체인 시스템을 통해 가맹점 냉장고까지 직접 배송한다. 점주는 재고를 미리 매입하지 않고 수요가 확인된 상품만 운영한다.
이를 통해 점주는 재고 리스크가 줄어들면서 현금 흐름이 안정되고, 과도한 할인 경쟁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유통 경쟁력이 점주의 지속 가능성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국민상회가 정의하는 ‘4세대형 큐레이션 마켓’이란 무엇인가.
동네 슈퍼와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한 오프라인 소매 유통이 1세대였다면, 접근성과 즉시성을 강화한 편의점 중심 구조가 2세대였다. 이후 검색과 비교, 배송을 기반으로 한 이커머스 플랫폼이 3세대 유통으로 자리 잡았다. 유통은 확장됐지만, 동시에 선택지는 과잉 상태에 이르렀다. 지금은 선택의 자유가 선택의 피로로 전환된 시대라고 본다. 상품과 정보가 넘쳐날수록 소비자는 더 많은 판단 비용을 치른다.
4세대형 큐레이션 마켓은 더 많은 상품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 부담을 줄이는 구조다. 고객이 찾는 방식이 아니라 유통이 먼저 데이터를 기반으로 선별하고 제안한다. 일정 기준을 통과한 상품만 큐레이션하고, 고객은 ‘검색’ 대신 ‘승인’에 집중한다. 검색 중심 소비에서 승인 중심 소비로의 전환이 4세대형 큐레이션 마켓의 핵심이다.
PB상품 전략도 궁금하다. 단순한 마진 확대 전략과 어떻게 다른가?
PB상품은 마진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플랫폼의 품질 기준을 만드는 기준점에 가깝다. 상품 가짓수를 늘리는 것은 쉽지만, 많아질수록 고객은 선택에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 그래서 가격 대비 품질의 기준을 PB로 먼저 제시한다. 내부 검증을 통해 반복 구매 가능성과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상품만 PB로 운영한다.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상품은 플랫폼에 올리지 않는다. 선택지를 늘리는 대신 실패 확률을 낮춘다.
최근 선보인 디저트 PB상품은 판매 시작 약 1시간 만에 2만 개가 판매됐다. 상품 수가 아니라 신뢰가 축적된 상태에서 수요가 집중된 결과다. PB는 자사 브랜드 확대 전략이 아니라 플랫폼 신뢰를 관리하는 장치다.
‘국민 멤버스’ 등 온라인 확장은 어떻게 진행되나.
현재까지 구축해 온 구조가 오프라인 가맹점을 중심으로 한 신뢰 기반 유통이었다면, 앞으로는 이 구조를 온라인까지 확장해 하나의 플랫폼으로 연결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올해 2분기내 출시 예정인 ‘국민 멤버스(Kookmin Members)’는 그 전환의 시작점이다.
국민 멤버스는 가맹점 고객에서부터 확장된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수요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구조다. 기존 국민상회에서 다루지 않았던 가전, 의류, 렌탈, 교육, 여행 등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포함해, 오프라인에서 형성된 신뢰를 온라인으로 확장하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가맹점의 역할을 단순 판매 채널에서 ‘수요를 연결하는 플랫폼 파트너’로 확장시킨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점주는 상품을 사입하지 않더라도, 커뮤니티 기반 수요를 통해 발생하는 거래에 참여하고 수익을 공유받는 구조로 진화하게 된다. 이는 유통 구조를 ‘판매 중심’에서 ‘연결 중심’으로 전환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회사는 비즈니스 연계선상에서 라이브 커머스 서비스 ‘국민멤버스 라이브’도 2분기 내 단계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실시간 콘텐츠와 커뮤니티 수요를 결합해 상품 노출과 구매 전환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구조로, 기존 오프라인 유통에서 형성된 신뢰를 온라인 실시간 커머스까지 확장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궁극적으로는 오프라인 가맹점, 온라인 커머스, 라이브 커머스, 커뮤니티 수요가 하나로 연결되는 옴니채널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유통이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라, 고객의 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플랫폼으로 확장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결제 신뢰는 제조사의 조건을 바꾸고, 무재고 구조는 점주의 안정성을 높이며, 데이터 기반 큐레이션은 고객 만족도를 반복 구매로 연결한다. 각각의 전략이 분리된 정책이 아니라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할 때, 플랫폼은 단기 매출이 아니라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하게 된다. 이것이 변영민 대표가 강조하는 ‘신뢰가 거래를 만들고, 거래가 다시 신뢰를 강화’하는 우리동네국민상회의 순환 구조다.
유통 산업이 가격 경쟁 중심에서 운영 구조와 효율성 중심으로 변화하는 가운데, 이 같은 모델이 시장에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김성혜 한경닷컴 기자 shkim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