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폐국이 외국산·불법 채굴 금을 ‘미국산’으로 둔갑시켜 금화를 생산·판매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금 공급망의 추적·검증 체계가 붕괴하고 범죄 자금과 시장이 직접 연결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27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 조폐국은 연간 10억달러(약 1조4000억원) 이상의 금화를 판매하면서 법적으로 ‘100% 미국산 금’ 사용을 보증해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 광산, 멕시코·페루 전당포, 콩고 광산 등 다양한 해외 출처 금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의 핵심은 금이 유통 과정에서 ‘합법화’되고 ‘미국산’으로 재분류되는 구조다. 콜롬비아 북서부 카르텔 지배 지역에서 불법 채굴된 금은 소규모 광부 등록 제도를 통해 합법 서류를 부여받고, 이후 수출 과정을 거치며 원산지 정보가 사실상 사라진다.
이후 미국 텍사스의 정제업체로 유입된 금은 남미산 금, 재활용 금과 함께 용해·혼합된다. 업계에서는 이 과정에서 미국 내에서 생산된 금과 섞이면 최종 제품을 ‘미국산’으로 간주하는 관행이 자리 잡은 것으로 나타났다.
금 가격이 트로이온스당 약 5000달러 수준으로 상승한 것도 이런 구조를 강화하고 있다. 10년 전보다 약 4배 오른 가격은 범죄 조직과 불법 채굴업자에게 강력한 유인을 제공했다. 실제로 수억 달러 규모의 해외 금이 미국 조폐국 공급망으로 유입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금 유통은 단순한 산업 문제가 아니라 국제 안보와도 연결된다. 금 채굴 수익은 수단 내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란·베네수엘라의 제재 회피 자금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테러 조직과 알카에다 연계 세력까지 금 사업에 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조폐국은 공급망 검증을 사실상 하지 않았다. 미 재무부 감사에 따르면 조폐국은 지난 20년간 공급업체의 금 출처를 확인하지 않았으며, 외국산 금을 미국산으로 상쇄하는 ‘오프셋’ 방식도 법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지적됐다.
일부에서는 금 수요를 충족하려면 외국산 금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는 현실론도 제기된다. 실제로 조폐국 측은 미국산 금만으로는 수요를 맞출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으며, 최근에서야 공급망 추적 개선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전문가들은 현재 구조에서는 불법 금과 합법 금의 구분이 서류상에만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공급망이 복잡하게 얽힌 상태에서 기업이나 기관이 적극적으로 확인하지 않는 한, 범죄 자금이 합법 시장으로 유입되는 흐름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향후 관건은 공급망 투명성 강화 여부다. 재무부의 조사와 정책 개선이 실제로 이뤄질지, 금 시장 전반에서 원산지 검증 기준이 강화될지가 글로벌 금 거래 질서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 꼽힌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