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이 미덕이라면, 자연은 왜 속임수를 선택했을까. 뻐꾸기는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맡기고, 난초는 수컷 곤충의 짝짓기 본능을 이용해 꽃가루를 옮긴다. 성페로몬을 흉내 내어 멧돼지를 유혹하는 송로버섯, 포식자의 눈을 속이는 나비의 가짜 눈 무늬, 숙주 세포의 방어 체계를 우회하는 암세포까지. 생물의 세계는 우리의 상식과 달리 속임수로 가득 차 있다.
<자연에서 인간까지 속임수의 진화>는 이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다룬다. 미국 센트럴워싱턴대 생물과학부 석좌 연구교수 리싱 선은 기만이 도덕적 일탈이 아니라 생명이 수억 년에 걸쳐 갈고닦은 생존 전략이라고 주장한다. 생물학, 인지과학, 진화심리학을 넘나드는 그의 시선은 단세포 박테리아의 무임승차부터 인간 사회의 금융 사기에 이르기까지, 속임수가 작동하는 구조를 하나의 일관된 원리로 꿰어낸다.
저자는 두 가지 틀을 제시한다. ‘속임수의 제1법칙’인 거짓말은 의사소통의 왜곡이다. 보상을 주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유인하는 난초의 전략은 의도적 설계의 산물이 아니라,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진화가 선택하고 축적한 결과다.
‘제2법칙’인 기만은 상대의 인지적 빈틈을 공략한다. 뻐꾸기의 탁란이 숙주 새의 인지 능력을 시험하고, 그 압박이 더 정교한 탐지 능력의 진화를 불러왔듯, 속임수는 오히려 더 높은 수준의 인지와 신뢰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진화적 압력으로 작용한다.
이 시각은 고전 <이기적 유전자> 이후 진화론이 던져온 도발과 맞닿아 있다. 다만 저자의 논의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실제 모델 프랭크 애버그네일의 사기 행각, 가상화폐 다단계를 통해 수십억 달러를 가로챈 ‘루자 박사’ 사건, 폰지 사기와 스포츠 도핑까지 인간 사회의 다양한 속임수를 자연의 원리와 같은 맥락에서 분석한다. 사기꾼은 별종이 아니다. 그들은 감각과 인지의 허점을 찌르는, 가장 오래된 생존 전략의 인간 버전이다.
흥미로운 것은 저자가 속임수만을 조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흡혈박쥐의 먹이 나눔처럼 정직한 협력으로 집단을 유지하는 사례, 공작의 화려한 꽁지깃처럼 쓸모없어 보이는 낭비를 통해 신뢰를 증명하는 ‘핸디캡의 원리’도 함께 다룬다. 정직은 속임수가 사라진 뒤 생겨난 미덕이 아니라, 속임수와의 경쟁 속에서 선택된 또 하나의 전략이다. 감시, 판별, 신뢰의 체계는 기만과 맞서며 함께 진화해왔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