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우먼 이수지의 유치원 교사 패러디 영상이 500만회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현장 고충에 대한 관심이 커진 가운데, 실제 유치원 교사 10명 중 6명 이상이 독감에 걸리고도 출근한 경험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교권 침해와 과도한 노동, 대체인력 부재가 유치원 현장의 구조적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23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전국 유·초·중·고·특수학교 교사 668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유치원 교사 3547명 가운데 64.5%는 독감에 걸린 상태에서도 출근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사립유치원 교사의 경우 이 비율은 73.6%로 전체 학교급 가운데 가장 높았다. 초등학교는 49.3%, 특수학교는 48.6%, 중학교는 47.0%, 고등학교는 46.0%로 집계돼 유치원 교사의 응답 비율이 다른 학교급을 크게 웃돌았다.
독감에 걸리고도 출근한 이유로는 '대체 인력을 구할 수 없어서'가 68.6%로 가장 많았다. '관리자의 압박과 눈치 때문'이라는 응답도 59.6%에 달했다. 초·중·고 교사들이 병가를 쓰지 못하는 이유로 주로 동료에 대한 미안함을 꼽은 것과 달리, 유치원 현장에서는 구조적인 인력 공백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체인력 체계가 마련돼 있다고 답한 유치원 교사는 16.4%에 그쳤다. 교사 한 명이 빠질 경우 이를 대체할 시스템이 사실상 없는 셈이다. 앞서 경기 부천의 한 사립유치원에서는 20대 교사가 40도 고열을 동반한 독감 증세에도 병가를 쓰지 못한 채 숨진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번 조사 결과는 유사한 상황이 현장 전반에 퍼져 있음을 보여준다는 해석이 나온다.
유치원 교사들의 위기의식도 컸다. 응답자의 92.9%는 '사망한 교사와 자신의 처지가 비슷하다'고 답했다. 전교조는 이번 사건이 특정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교사들이 공통으로 겪는 구조적 위기임을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교조는 "유아교육 현장의 노동 강도가 이미 임계점에 도달했다"며 "유아교육은 무분별한 사립 지원이 아닌 사립 유치원의 법인화 추진으로 교육 현장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교사들의 현실에 대한 공감은 이수지의 콘텐츠를 계기로 더 확산하는 모습이다.
지난 7일 이수지의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영상에서 이수지는 유치원 교사의 일상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패러디했다. 영상 속 교사는 학부모들로부터 "아이가 I(내향형)라서 E(외향형) 친구들 사이에서 기가 빨린다. I인 친구들 위주로 반을 묶어달라", "대변 처리할 때 원에서 얇은 싸구려 물티슈 말고 유칼립투스 성분이 포함된 식물성 원단으로 써달라" 등의 요구를 받는다.
또 "최근에 압구정 로데오를 갔냐. 클럽 다니는 거 아니냐"는 질문을 받거나, "아이가 '우리 선생님 얼굴은 너무 크고 쭈글쭈글해서 무섭다'고 하더라. 그래서 아이 아빠가 화가 많이 났다"는 식의 말을 듣는 장면도 담겼다. 영상은 과장된 설정을 빌렸지만, 교사와 학부모 사이의 긴장과 현장 피로를 비교적 현실감 있게 짚었다는 반응을 얻고 있다.
영상 공개 이후 댓글창에는 현직·전직 교사들의 경험담이 이어졌다. 한 네티즌은 "보는 내내 트라우마처럼 심장이 빨리 뛰고 속이 울렁거린다"며 공감을 나타냈고, 또 다른 네티즌은 "아동의 권리만큼이나 교사들의 권리도 당연한 세상이 되길 바라본다"고 적었다. 어린이집 교사 딸을 둔 아버지라고 밝힌 한 이용자도 "딸이 퇴근 후 집에 오면 초죽음이 된다. 부모 입장에서 보기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