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영업이익률 72%. SK하이닉스가 분기 최대 매출을 기록한 4월 23일 삼성전자 경기 평택캠퍼스 인근 왕복 8차선 대형 도로는 차량 통행이 전면 통제됐다. 차 대신 아스팔트를 메운 것은 4만여 명의 삼성전자 노동자들이다. 노동자들이 성과급 상한선 폐지를 크게 외치는 사이 한쪽에서는 ‘기업 경쟁력’을 우선시하는 주주들이 노조의 집회에 반대하며 맞불 집회를 열고 대치했다.
노조 측은 오는 5월 21일부터 18일간의 총파업을 예고했다. 현실이 된다면 하루 1조원의 생산 차질이 예상되는 초유의 사태다. 반도체 양대 산맥, 이른바 ‘삼성닉스’의 기록적인 실적이 파업의 전주곡이 된 풍경. 초호황의 축제는 어쩌다 분열의 전장이 됐을까.노조와 주주, 평택으로 몰려든 사람들“과도합니다. 세금 혜택을 고려하면 사회 환원해야죠.”
삼성전자 노동조합의 성과급 관련 기사에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댓글이다. 최근 한국 사회의 가장 큰 화두는 단연 ‘성과급’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기업에서 촉발된 성과급 논쟁은 수치로 따지면 전체 취업자의 단 0.6%에도 못 미치는 ‘소수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나 그 파장은 심상치 않다. 기록적인 실적이 가져온 결실을 두고 누군가는 ‘정당한 몫’을, 누군가는 ‘기업의 생존’을, 또 다른 누군가는 ‘상대적 박탈감’을 외친다. 부서·노사·경쟁사 간의 담장 안 내홍을 넘어 주주, 하도급업체, 심지어 국민청원까지 뒤엉킨 전방위적 ‘성과급 전쟁’으로 번졌다.
도화선은 삼성전자가 1분기 57조원이라는 기록적인 영업이익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영업이익률 43%. 삼성전자 노조는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요구하며 그간 보상의 한계점을 만들어온 ‘상한제’의 폐지를 핵심 쟁점으로 내걸었다. 올해 기준 약 45조원, 1인당 약 6억원 규모다. 노조는 요구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총파업도 불사하겠다는 강경 입장을 밝혔다.
노조의 주장은 경쟁사인 SK하이닉스의 보상 수준을 근거로 한다. 앞서 글로벌 투자은행 맥쿼리증권은 SK하이닉스가 내년에 1인당 평균 성과급으로만 12억9000만원을 지급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혀 화제성에 기름을 부었다. 업계 일각에서는 SK하이닉스가 올해 영업이익 250조원을 달성할 경우 1인당 평균 초과이익분배금(삼성전자의 OPI, SK하이닉스의 PS)이 약 7억원에 달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왔다.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하이닉스 직원들은 “인생이 달다”, “웃으면서 야근한다”며 자축했고 전 직원이 ‘백만장자’가 된다는 밈이 돌기도 했다. 외부에서도 하이닉스 생산직 지원 희망이 폭주하고 ‘의치한약수(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에 반도체학과를 붙인 ‘의치한약수반’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부러움의 대상이 된 하이닉스의 현재 보상 시스템은 수년간 이어진 노사 간의 치열한 진통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2021년 이른바 ‘MZ 상소문’ 사건으로, 이때부터 성과급 논쟁의 본질은 액수를 넘어 산정 방식의 투명성 문제로 확장됐다. 당시 연봉의 20% 수준으로 책정된 PS가 경쟁사인 삼성전자(47%)의 절반에도 못 미치자 한 4년 차 직원이 최고경영진을 향해 성과급 산출 근거인 경제적 부가가치(EVA) 산식을 공개하라는 항의 메일을 보내며 파장이 일었다. 사측의 압박과 최태원 회장의 연봉 반납 선언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은 금전적 보상보다 공정한 기준 확립을 강력히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SK하이닉스는 이 사건을 계기로 성과급 재원을 ‘영업이익의 10%’로 명문화하며 산정 방식을 단순화하고 투명성을 대폭 강화했다. 지난해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영업이익의 10%를 상한선 없이 지급하기로 합의하면서 실적과 보상을 연동시키는 현재의 시스템을 완성했다.
이번 삼성전자 노조가 내세운 핵심 주장 역시 이 ‘상한선의 철폐’다. 현재 초과이익분배금 지급 한도는 개인별 연봉의 50%로 제한하고 있는데 경쟁사인 하이닉스처럼 이 상한을 없애자는 것이다.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지난해 말부터 성과급 상한 폐지와 투명한 제도화를 요구했으나 회사는 일회성 답변으로 일관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SK하이닉스로 이직한 조합원이 4개월 동안 200명이 넘는 등 삼성전자 직원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비정상적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구직 사이트 사람인이 성인 2304명을 조사한 결과 20%가 ‘입사하고 싶은 대기업’ 1위로 SK하이닉스를 꼽았다. 처음으로 삼성전자(18.9%)를 앞질렀다.
노조 측은 자신들을 향한 ‘노조 악마화’ 시선에 반박하며 보상체계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300조의 주인은 누구인가
주목할 것은 이번 성과급 전쟁이 기업의 담장을 넘어 외부 이해관계자들의 충돌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전선의 최전방에 선 이들은 주주들이다. 노조 집회가 열린 4월 23일 맞은편에 선 주주들은 “지금의 삼성을 세계에 우뚝 서게 한 건 경영자만도 직원들만도 아니라 바로 우리 주주의 끊임없는 성원과 지지에 가능했다”며 “성과급 잔치에 진짜 주인 우리 500만 주주는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조계에 따르면 기업의 이윤은 본질적으로 주주의 몫이다. 경영성과급을 근로의 대가인 ‘임금’보다는 ‘이윤의 배분’으로 본다. 기업의 이익은 시장 상황이나 경영진의 결단 등 근로자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법원은 지난 4월 현대해상 사건을 포함해 그간 여러 판결에서 “경영성과급은 시장 상황, 지출 비용의 규모 등 다른 요인이 합쳐진 결과물”이라며 임금성을 부정해 왔다. 2021년엔 아예 주주를 명문화했다. 당시 LG디스플레이 관련 판결에서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사용자가 본래 주주의 몫인 이윤을 PS·PI를 통해 근로자에게 배분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임금성을 부정했다.
다만 올해 1월 대법원이 삼성전자 목표 인센티브(PI)에 대해 ‘임금’ 판결을 내리면서 상황은 단순하지만은 않다. 법원은 해당 PI를 ‘근로성과의 사후적 정산’으로 정의했다. 즉 노동자가 스스로 통제 가능한 목표를 달성해 얻은 결과물이므로 이는 주주의 몫이 아닌 노동자의 몫이란 논리다.
현재 노조가 요구하는 ‘상한 폐지 및 영업이익 직접 연동’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주주의 몫(경영성과 분배)으로 보고 있는 초과이익분배금을, 노동자의 몫(근로성과 정산)인 임금 영역으로 끌어오겠다는 것이다. 즉 반도체 초호황의 결실을 ‘근로자의 통제 가능한 노력’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자본과 시장이 만든 보너스’로 볼 것인가라는 분배의 문제가 충돌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한 우물만 파는 SK하이닉스는 영업이익과 보상을 직접 연동하는 방식이 비교적 수월했다. 전사 이익이 곧 반도체의 성과였기 때문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반도체(DS) 외에도 스마트폰(DX), 가전, 디스플레이 등 여러 사업부를 거느린 복합 기업이다. 특정 사업부의 호황이 전사 이익을 견인하더라도 다른 사업부와의 형평성이나 전사 차원의 투자 재원 배분 등을 고려해야 하는 ‘삼성만의 고차방정식’이 존재한다. 반도체 산업의 사이클도 리스크다. 노조가 요구하는 ‘영업이익 직접 연동’이 사측에 비용 이상의 전략적 난제로 다가오는 이유다.
하도급업체들도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국내 반도체 생태계의 허리인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다. 이들은 “우리의 고혈을 짠 성과급 파티”라며 냉소 섞인 원성을 쏟아내고 있다.
실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역대급 영업이익을 갈아치우는 초호황기에도 협력사들의 시름은 깊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단가 인하’ 압박 때문이다. 올해 역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주요 소부장 기업들과의 협상에서 공급 단가를 한 자릿수 수준으로 인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가격은 AI 열풍을 타고 치솟았지만 정작 이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소재와 부품 값은 뒷걸음친 셈이다.
협력사 A사 임원은 “원가가 올랐다고 단가 조정을 요구하고 싶어도 거래선이 끊길까 봐 입도 뻥긋 못 한다”며 “대기업이 재입찰 카드를 꺼내 들면 결국 더 낮은 가격을 써낼 수밖에 없는 것이 하청의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현금 대신 주식?…노사 갈등 풀 치트키는로펌업계에서는 성과급의 본질적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 노사가 소통하고 공유된 인식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고 조언한다. 운영 중인 제도가 조직의 재무 성과를 나누는 사후 배분인지, 아니면 개별 역량 강화를 위한 동기부여 수단인지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나아가 전문가들은 획일적인 연 1회 현금 성과급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구체적으로는 ▲기술 주기 단축에 따른 프로젝트형 인센티브 도입 ▲보상 기준의 가시성과 투명성 강화 ▲신기술 습득 등 역량 개발에 대한 보상 확대 ▲전문 ‘보상 커뮤니케이터’를 통한 노사 간 신뢰 회복이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해외 사례도 유의미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빅테크들은 한국처럼 그해 영업이익을 현금으로 털어주는 대신에 ‘성과에 따른 철저한 차등’과 ‘주식 기반 보상’을 핵심으로 삼는다. 엔비디아나 애플처럼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을 적극 활용해 인재를 붙잡아두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주식 보상의 가장 큰 장점은 직원이 곧 주주가 된다는 점이다. 노조와 직원이 과도한 현금을 요구해 회사의 투자 재원을 갉아먹으면 결국 자신이 보유한 주식 가치도 떨어진다. 이 구조 속에서 노사 갈등은 자연스럽게 희석되고 직원들은 기업가치 제고에 더 몰입하게 된다.☞ 5월 파업, 삼성전자 주가엔 ‘독’인가 ‘약’인가코스피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6500을 넘어선 4월 23일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와 나란히 장중 신고가를 경신했다. 축제 분위기 속에서 차익실현 매물도 쏟아졌다. 시장의 눈은 5월 21일로 예정된 노동조합의 18일간 총파업 예고를 향해 있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5월 파업이 현실화된다면 메모리 생산 차질에 따른 공급 부족을 심화시켜 가격 상승 압력을 한층 강화하는 핵심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글로벌 메모리 시장은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는 극도로 타이트한 환경이다. 삼성전자의 D램(36%)과 낸드플래시(32%) 점유율을 고려할 때 18일간의 라인 정지는 전 세계 공급망에 거대한 구멍을 낸다. 공급이 줄면 가격은 급등하고 삼성전자가 보유한 기존 재고 가치 역시 치솟는 ‘역설적 호재’로 둔갑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단, 중장기적 관점에서는 ‘독’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더 깊다. 반도체 산업의 생명은 적기 공급(Just-In-Time)이다. 파업으로 인한 공급 불확실성은 거물급 고객사들이 리스크 분산을 위해 삼성전자의 비중을 낮추는 ‘멀티 벤더’ 전략을 강화하게 만든다. 또한 파업 기간 중 중단되는 연구개발(R&D)과 설비 투자는 초격차 기술 리더십에 균열을 내며 기업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