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차까지 쓰고 왔어요"…2030女 몰린 '이 카페' 정체 [트렌드+]

입력 2026-04-21 19:18
수정 2026-04-21 19:26


"남의 최악의 연애를 읽으러 카페에 간다."

지난 14일 오후 5시경 서울 송파구 송리단길에 위치한 한 카페. 일반 카페와 달리 손님들은 커피잔보다 수첩을 더 자주 집어 들었다. 수첩 표지에는 '최악의 연애썰', '자기 전 떠오르는 흑역사'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숏폼에서 주로 소비되는 이야기 콘텐츠 주제가 적혀 있었다.

짧고 강한 자극의 숏폼 영상이 대세인 시대에서 역설적으로 '읽기와 쓰기'를 통해 도파민을 얻는 2030이 늘어나고 있다. 일명 '텍스트 도파민' 소비다.

숏폼 대신 '텍스트'…카페서 읽고 쓰는 2030
카페를 찾은 손님들은 오프라인에서 콘텐츠를 소비하기 위해 왔다고 입을 모았다. 수첩이 놓인 매대에서 주제를 고르던 20대 여성 대학생 장모씨는 "인스타그램에서 여기 카페를 보고 관심이 생겨 친구랑 남양주에서부터 왔다"며 "밖에서도 친구랑 재밌는 걸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여기가 딱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도파민 콘텐츠는 주로 온라인에서 소비돼 왔다. 인공지능(AI) 트렌드 분석 전문 기업 뉴엔AI의 분석 서비스 퀘타아이에 따르면 도파민 언급량은 꾸준히 오름세를 탔다. 지난 2023년 40만6500건에서 2024년 97만3500건, 2025년 130만건으로 2년 사이 언급량이 219.8% 늘었다. 데이터는 뉴스·커뮤니티·블로그·카페·엑스(X·옛 트위터)·유튜브를 기반으로 집계됐다.



온라인 중심 콘텐츠가 오프라인으로 확장되는 배경에는 '숏폼 피로도'가 자리했다. 이날 카페를 찾은 손승연 씨(30)는 "쇼츠나 릴스는 짧게 보여지고 끝나는데 여기서는 글을 읽으니 더 집중됐다"며 "특히 자연스럽게 연상되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텍스트를 기반으로 서로 이야기를 공유하는 상호작용도 일어났다. 손씨는 이날 자신의 이야기를 익명으로 수첩에 적었다. 손씨와 함께 온 조아름 씨(35)는 "독특한 거나 색다른 걸 경험한 걸 좋아해서 여기 온 것 자체가 가치 있다"며 "주말에는 항상 자리가 없어서 같이 연차 낸 날 왔다"고 했다.

고객 '80%' 2030 여성…도파민 텍스트, 2호점까지 열어

해당 카페 '하우피'를 운영하는 강성민 대표(30)는 대구에서 본점을 운영하다 늘어나는 인기로 지난해 11월 서울 송파구 송리단길에 2호점을 열었다. 텍스트 도파민 콘텐츠는 카페 재방문율을 높이기 위해 들여놓은 장치다. 초반에는 고민을 공유하는 수첩이었으나 일종의 SNS처럼 손님들 사이에 활용되면서 '오프라인 SNS'로 아이디어를 확장했다는 게 강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방명록이 있는 카페는 많지만 주제별로 소통이 이뤄지는 공간은 드물다”며 “최근에는 유사한 콘셉트를 도입해도 되냐는 문의도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텍스트 도파민의 주 수요자층은 2030 여성으로 나타났다. 강 대표는 "결제 데이터를 보면 2030 여성이 80%를 차지한다"며 "숏폼이 대세지만 재밌는 주제와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라면 1030에 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카톡 장문 메시지보다 손편지에서 오는 감동이 따로 있는 것처럼 고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뾰족한 타깃을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텍스트 힙 '참여형 콘텐츠' 확산

빠른 자극의 영상에 익숙해진 2030 세대가 다시 '이야기'로 돌아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순 시청에 머물던 콘텐츠 소비가 읽고 쓰는 ‘참여형’으로 확장되며, 텍스트 기반 콘텐츠가 새로운 소비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성민 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텍스트는 가장 원초적인 서사 소비의 매체이고, 상상력을 기반으로 참여자가 더 넓게 확장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영상이나 웹툰 등 다른 콘텐츠보다 참여할 수 있는 범위가 넓은 형태라는 점도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교수는 "2030 세대, 특히 해당 세대 여성들의 전반적인 텍스트 소비가 높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텍스트 도파민이 성장하는 문화적 토대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유구한 전통을 가지고 있는 텍스트가 도파민적인 요소로 젊은 세대에게 다시 발견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수빈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