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의 나랏빚 경고…靑 "공포 프레임"

입력 2026-04-20 17:39
수정 2026-04-21 01:48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한국을 ‘나랏빚이 가장 빠르게 늘어날 나라’로 지목하자 청와대 경제 참모들이 일제히 반박에 나섰다. ‘국가부채=위험’이라는 도식은 일차원적 공포 담론이며 논의의 초점을 성장 잠재력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19일 페이스북에 “IMF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발표가 나올 때마다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보도가 국내 헤드라인을 장식한다”며 “그러나 국가부채비율을 둘러싼 논쟁은 종종 숫자 자체보다 정치적 프레임에 의해 과장되거나 단순화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핵심은 성장 잠재력”이라며 “기업 경쟁력이 높아지고 자본시장이 성장하며 생산성이 개선된다면 세입 기반은 자연스럽게 확대된다. 국가부채비율은 충분히 관리 가능한 범위에 머무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류덕현 청와대 재정기획보좌관도 이날 페이스북에 “국제적 기준에서 볼 때 한국의 재정 상태는 여전히 독보적으로 건전하다”며 “완만한 부채 수준, 낮은 이자 부담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재정 제도를 갖춘 한국의 상대적 강점을 부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참모들이 일제히 국가부채에 대한 글을 올린 건 IMF의 최근 ‘재정모니터’ 보고서가 계기가 됐다. 보고서는 5년간 부채비율이 가장 빠르게 증가할 국가로 벨기에와 한국을 꼽았다. “2031년까지 벨기에는 국내총생산(GDP)의 122%를 초과하고, 한국은 63%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채권시장의 우려를 잠재우고 국가부채 논의를 수치가 아니라 ‘효율적 재정 활용을 통한 잠재성장률 확충’으로 전환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반박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IMF 등이 우려하는 것은 현재 수치가 아니라 빚이 늘어나는 속도”라고 지적했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씀씀이는 늘어나고 세입 증가는 장담하기 어렵다”며 “재정 증가 속도를 제어하지 않으면 통제하기 어려운 속도로 가속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류덕현 "국채 이자비용 GDP 1% 불과"…IMF "문제는 증가 속도"
靑 경제사령탑 'IMF 나랏빚 경고' 일제히 반박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 류덕현 청와대 재정기획보좌관 등 경제 사령탑이 국제통화기금(IMF)의 국가부채 경고를 이례적으로 비판하고 나선 것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이라는 숫자에 매몰돼 한국의 재정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에서다. 류 보좌관은 “한국의 견고한 재정 펀더멘털과 정책 규율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했고, 김 실장은 “정책과 선택에 따라 미래는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제 전문가들도 재정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경기 변화에 대응하고 성장 잠재력을 확충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체로 동의한다. 다만 IMF 등이 우려하는 건 빚의 증가 속도이며, 이는 구조개혁 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부채비율 낮다 vs 증가 속도가 문제류 보좌관은 지난 19일 올린 페이스북 글에서 “유례없이 빠른 인구 구조 변화와 잠재성장률 하락 등 구조적 압박이 공공 재정에 부담을 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재정 지속가능성이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다는 내러티브는 실제 재정 현실 및 자본시장이 보내는 신호와 괴리가 있다”고 했다. “한국의 중앙정부 기준 GDP 대비 부채비율은 50%를 겨우 넘는 수준으로 선진국 기준에서 매우 낮은 수치이며, 국채 이자 지급액도 GDP 대비 약 1%로 충분히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김 실장도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D1)이 49% 수준으로 109%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크게 밑돈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현재 부채비율이 다른 선진국보다 양호하다는 점은 IMF 등 국제기구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우려하는 건 속도다. 특히 각종 연금, 보험 등 법으로 정한 의무지출이 급증하는 것을 문제로 지적한다. IMF는 올해 초 별도의 보고서에서 지난해 13.7%인 한국의 GDP 대비 의무지출이 2050년 30~35%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의무지출이 증가하면 정부가 경기 부양이나 미래 먹거리에 투입할 수 있는 재량 지출 폭이 좁아진다. 정부도 내년 의무지출을 10% 줄이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김 실장은 국가부채비율이 관심을 받는 것은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다행히 2025년 국민연금 모수 개혁으로 보험료율이 인상됐고, 기금 소진 시점도 일정 부분 늦춰질 것으로 전망된다”며 “최근 기금 운용 성과까지 개선되면서 재정 전망은 다소 완화됐다”고 썼다.

이에 대해 재정 전문가들은 재정 추계도 금융회사의 스트레스 테스트처럼 보수적인 가정하에 해야 안정적인 재정 관리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박종상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증시가 이례적으로 상승한 작년 수익률이 10~20년 뒤에도 지속될 것으로 가정하는 건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으로 이어진다”며 “이는 필요한 구조개혁 논의를 저해한다”고 말했다. 다만 김 실장도 “물론 구조개혁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며 “그러나 미래는 고정된 수치가 아니라 정책과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국가채무비율 논쟁 더 치열해져야”우리나라 정책 당국자와 국제기구의 의견이 일치하는 건 잠재성장률 확충 필요성이다. 김 실장은 “성장 잠재력이 높아지면 세입 기반이 커지고 국가채무 부담도 완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업 경쟁력 강화, 자본시장 성장 등을 통해 분모인 GDP를 키우면 부채비율은 충분히 관리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IMF도 20년 전부터 구조개혁을 통한 성장 잠재력 확충을 강조해 왔다. 다만 세수 기반 확충, 무분별한 중소기업 지원 중단, 조세지출 축소 등 재정 효율성을 우선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논란을 ‘낙관론 대 위기론’의 대결로 보기보다 재정을 성장의 마중물로 활용하는 동시에 부채 증가 속도를 관리하는 재정 프레임워크를 구축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기적으로 재정을 투입해 경기를 부양할 때인지, 장기적으로 성장 잠재력을 확충할 때인지를 유연하게 판단해 재정 역할과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실장도 “국가채무비율 논쟁은 더 치열해져야 한다”며 “‘양극화, 지방소멸, 청년 실업, 미래 전략산업 투자 같은 공동체의 핵심 과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재정이 필요한가’와 같은 질문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했다.

김익환/정영효/남정민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