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4월 20일 오후 3시 16분
금융당국이 회사채 발행 과정에서 계열사와 사내 채권 운용 부서를 동원한 증권사들에 징계를 내렸다. 계열사와 사내 조직을 참여시키는 방법으로 회사채 수요를 부풀리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은 주관 수수료로 보전해주는 관행에 제동을 건 셈이다.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 7일 삼성증권,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KB증권, 신한투자증권 등 대형 증권사 6곳을 대상으로 각각 4건의 ‘경영유의’ 조치를 내렸다.
증권사들의 광범위한 ‘캡티브 영업’이 징계의 배경이다. 캡티브 영업은 증권사 기업금융(IB) 부서가 회사채 주관 업무를 따내기 위해 사내 채권 운용 부서와 계열 보험·자산운용·캐피털사의 수요예측 참여를 약속하고 수임에 나서는 것을 의미한다. 가수요를 만들어 고객사의 조달금리를 낮춰주겠다는 조건을 내걸고 회사채 발행 영업을 한다는 얘기다. 사내 다른 부서나 계열사가 채권 인수 과정에서 손실을 보면 주관수수료 배분이나 손익 조정 등의 방식으로 이를 메워줬다.
금감원은 지난해부터 회사채 주관 점유율이 높은 대형 증권사를 대상으로 감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IB부서와 사내 타 부서 간 ‘차이니스월(정보 교류 차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NH투자증권에서는 발행어음 운용부서가 회사채 수요예측에 참여해 손실을 보자 이 운용 손익을 IB부서에 귀속시키는 등 광범위한 손익 조정을 벌였다. 신한투자·한국투자증권은 수요예측 참여와 배정에 대한 기여도를 인정한다는 명목으로 IB부서의 주관 수수료 일부를 채권 운용 부서나 리테일 부서에 지급했다. KB·신한투자증권은 사내 부서가 수요예측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별도의 ‘특별 한도(전략북 등)’ 설정을 검토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해 12월 금융당국은 금융투자협회를 통해 증권사에 공문을 보내고 IB부서가 보험사, 자산운용사 등 계열 금융사와 사내 채권 운용 부서에 수요예측을 종용하는 행위를 금지할 것을 주문했다. 이번 징계는 후속 조치 성격이 강하다. 금융당국은 징계 조치를 내리면서 증권사에 대해 부서 간 독립성을 확보하고 정보교류 차단을 강화할 것을 요구했다. 증권사가 회사채 주관 실적을 늘리는 과정에서 실수요자의 물량 배정을 저해하거나 공정한 시장가격 형성을 방해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금감원은 △자사가 주관하는 회사채 취득을 위한 별도 북(book) 한도 운용 금지 △부서 간 수수료 및 손익 조정 금지 △단기 처분 시 매도 상대방과 사유 등 구체적 증빙 보존 등을 조치 사항으로 전달했다. 업계에서는 증권사들이 자율 개선을 통해 판단 기준을 정립하고 이를 토대로 금융당국이 규제 방향을 다듬을 것으로 보고 있다. 캡티브 영업을 강하게 단속하면 채권시장에 공급되는 유동성이 줄어들 수 있어서다.
개별 증권사에 대한 실질적인 제재 없이는 캡티브 영업 관행이 여전히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먼저 캡티브 영업을 중단하는 증권사가 손해를 봐야 하는 구조”라며 “경징계를 감내하고 기존 영업방식을 고수하려는 곳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