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디커플링? 착시였다…중국, ASEAN 거쳐 미국으로 간다 [글로벌 머니 X파일]

입력 2026-04-17 07:00
수정 2026-04-17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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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의 미국 수출 방식이 크게 바뀌고 있다. 제3국에서 일명 '택갈이'로 불리는 단순 수출품 환적 대신 현지에서 제조 확대로 수출을 크게 늘리면서다. 미국이 관세 부과 등을 앞세워 대중국 무역 적자 감소에 나섰지만 효과가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무역 통계상 미국의 대중국 '디커플링(탈동조화)의 성공'은 착시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의 대중 수입 감소17일 미 상무부에 따르면 2024년 약 5820억 달러였던 미·중 상품교역 총액 규모가 지난해 약 4147억 달러로 28.7% 줄었다. 대중 수입은 4387억 달러에서 3084억 달러로 29.7%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미국의 대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등 ASEAN 상품 수입은 미 무역대표부(USTR) 집계 기준으로 전년 대비 28.9% 늘어난 4537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런 수치만 보면 중국이 빠진 자리를 ASEAN이 메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중국이 직접 수출 대신 ASEAN 지역을 조립 기지로 활용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매켄지 글로벌연구소(MGI)가 지난달 내놓은 ‘지오폴리틱스 앤드 더 지오메트리 오브 글로벌 트레이드: 2026 업데이트(Geopolitics and the Geometry of Global Trade: 2026 Update)’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ASEAN의 수출은 약 14%(2640억 달러), 수입은 약 11%(2080억 달러) 증가했다.

이 보고서는 ASEAN의 수입 증가분 상당 부분이 중국발이라고 분석했다. ASEAN의 대중 수입은 로위연구소 추산 기준 2025년 9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약 30% 급증했다. 올해 들어 이런 추세는 속도가 붙었다. 중국 해관총서 자료에 따르면 올 1~2월 중국의 무역흑자는 2136억 달러로 전년 동기(1,692억 달러)보다 크게 늘었다. 특히 대 ASEAN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29.4% 급증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베트남의 지난 1월 대중 수입은 190억 달러로 월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동시에 대미 무역흑자는 전년 동기 대비 약 30% 늘었다. 지난달 공개된 미국 센서스국 자료 기준으로 베트남의 1월 대미 무역흑자는 190억 달러에 달한다.

멕시코와 중국을 모두 제치고 미국의 최대 무역적자 상대국이 됐다. 미국의 대중 수입이 줄어든 만큼 ASEAN의 대미 수출이 늘었고, ASEAN의 대중 수입은 그 이상으로 늘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른바 '리커플링의 우회'가 일어나고 있다.제3국에서 부가가치 창출일부에선 단순 '원산지 세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UC샌디에이고 글로벌정책전략대학원의 캐롤라인 프로인트 교수가 작년 1월 발표한 정책보고서 ‘The China Wash: Tracking Products to Identify Tariff Evasion Through Transshipment’는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베트남 경유 대미 수출에서 직접 환적으로 추정되는 비중은 2020년 약 7.5%로 정점을 찍은 뒤 하락세를 보였다.

매켄지 MGI 보고서도 ‘착시 현상’을 데이터로 제시했다. 2022년 기준 베트남의 대미 수출에서 약 30%는 중국에서 만들어진 부품과 소재 등 ‘부가가치’가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단순히 베트남에서 생산된 제품이 아니라, 실제로는 중국에서 만들어진 가치가 상당 부분 포함된 상품이라는 의미다.

예를 들어 미국으로 수출되는 100달러짜리 전자제품이 있다고 가정하면, 최종 조립은 베트남에서 이뤄졌지만 핵심 부품과 중간재 상당 부분은 중국에서 공급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제품에는 ‘메이드 인 베트남’이라는 라벨이 붙지만, 실제로는 그 중 약 30달러는 중국 경제가 만들어낸 가치라는 것이다.

태양광 패널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 상무부는 작년 4월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4개국산 태양전지에 대해 반덤핑(AD) 및 상계관세(CVD) 최종 긍정 판정을 내렸다. 베트남산에는 기업에 따라 AD 271.28%, CVD 124.57%가 부과됐다. 캄보디아 일부 기업에는 CVD 3403.96%라는 전례 없는 세율이 적용됐다.



미국 상무부는 4개국 모두에서 기업들이 중국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고 있다고 판정했다. 이는 미국이 ASEAN 소재 태양광 공장이 사실상 중국 공급망의 연장선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미국의 2023년 4분기 태양전지·모듈 수입 중 84%가 이 4개국에서 왔다.ASEAN의 투지 유치 증가ASEAN에 외국인 투자(FDI)가 증가한 것도 중국의 대미 수출 우회 전략 영향이라는 분석도 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와 ASEAN 사무국이 발간한 'ASEAN 투자 리포트 2025'에 따르면, 2024년 ASEAN의 FDI 유입은 2260억 달러로 전년 대비 8% 증가했다.

같은 해 글로벌 FDI가 11%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제조업 FDI는 전년 대비 약 150% 급증한 440억 달러를 기록했다. OECD는 지난 6월 'OECD Economic Surveys: Viet Nam 2025' 보고서에서 "베트남이 미·중 무역분쟁으로 인한 생산기지 다변화에서 어떤 나라보다 많은 FDI를 유치했다"고 분석했다.

한국 경제도 영향을 받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 ASEAN 수출은 1225억 달러로 전년 대비 7.4% 증가했다. ASEAN이 한국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6.7%에서 17.3%로 상승했다. 한국도 중간재·자본재 수출 비중이 크다.



베트남브리핑에 따르면 작년 상반기 기준 베트남의 대한국 수입 중 77.84%가 컴퓨터·전자부품, 10.30%가 기계장비다. 약 91%가 중간재·자본재에 해당한다. 이 부품들은 베트남에서 조립돼 미국으로 재수출되는 구조다. 한국도 미국의 ASEAN 경유 환적 단속이 강화될수록 한국 부품 수요에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