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가 1000만 명을 넘지 못하게 하면 어떤가.’
오는 6월 스위스에서 국민투표에 부쳐질 안건이다. 인구수 상한제를 도입한 나라가 전무후무한 점을 감안하면 황당한 투표다. 유럽 국가 간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솅겐 협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기업의 외국인 인력 확보 역시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스위스는 이를 국민의 선택에 맡긴다. 직접 민주주의라서다.
스위스에서는 급진적인 의제가 잇달아 국민투표 문턱을 넘고 있다. 복잡한 정책이 단순한 구호로 선택되고, 극단적 쟁점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온다. 직접 민주주의 제도가 한계에 마주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국민투표는 스위스의 오랜 자랑이었다. 여러 칸톤(주)이 연합해 형성된 국가인 만큼 중앙이 결정하기보다 주민이 참여하는 방식이 더 잘 맞았다. 지역별 전통이 강해 각 지역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정치문화가 쉽게 자리 잡았다. 최초의 투표 발의가 있었던 1893년부터 2024년까지 235건의 국민발의가 이뤄졌다. 늑대 사냥 허용 같은 가벼운 사안에서부터 기본소득, 연금개혁까지 스위스인은 직접 의견을 표명할 기회를 누려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한계가 분명해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대표성 부족’이다. 스위스 국민투표의 평균 투표율은 40%대에 그치고, 일부 안건은 30%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과반을 얻어도 전체 국민의 15~20%만 동의한 결과일 수 있어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남발되는 국민투표가 투표율을 낮추고 있다. 1977년 정해진 투표 발의 기준(10만 명 서명) 당시 스위스 인구는 지금의 3분의 2 수준에 불과했다. 조직화된 캠페인 확산도 발의를 용이하게 해 연평균 1건도 안 되던 국민투표가 최근에는 4건 이상으로 늘었다.
소수가 과대대표되는 문제도 커지고 있다. 이민 제한과 유럽연합(EU) 통합 반대를 앞세운 극우 성향의 스위스인민당은 국민발의를 적극 활용하며 세력을 확대해왔다. 2009년 이슬람 사원 첨탑 건설 금지안이 대표적이다.
온라인 내 극단적인 발언이 여론을 왜곡하기도 한다. 일반 유권자가 정책의 세부 내용보다 슬로건에 영향을 받기 쉽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신 교수는 “결국 직접 민주주의가 환상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국민은 직접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누군가가 질문을 만들고 설정한 프레임에 여론이 유도되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