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라이프이스트-정인호의 통섭의 경영학] 트럼프의 승리 선언, 누구를 위한 것인가?

입력 2026-04-13 17:49
수정 2026-04-13 17:5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 2주간의 휴전에 합의한 뒤, 지난 7일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휴전을 두고 승리를 선언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완전하고 완벽한 승리다. 100%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과연 미국은 승리했을까?

역사는 이 질문에 대해 여러 번 경험해 왔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전날,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미국 국민들에게 “우리는 승리 외에 다른 결과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미국은 정말 승리했을까? 부시 대통령은 그렇게 주장하려 했다. 그는 항공모함 위에서 “이라크 전투에서 미국과 동맹국이 승리했다”는 연설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 선언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 이라크 전쟁은 그때 끝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때부터 길고 고통스러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2010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마침내 종전을 선언하기까지 7년이라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 사이 민간인 15만 명과 군인 5,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라크 전쟁을 돌이켜보면 우리가 ‘승리’라고 부른 것은 극히 제한된 순간의 군사적 우위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짧은 승리를 위해 치른 대가는 압도적으로 컸고, 그 여파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2001년 시작된 이 전쟁은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어졌고, 미국은 테러 조직을 약화시키고 정권을 교체하는 데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021년 미군이 철수한 이후 탈레반이 다시 권력을 장악하면서, 그동안의 희생과 투자가 무엇을 남겼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왜 끊임없이 승리를 선언하는 걸까? 전쟁은 본질적으로 복잡하고 모호한 과정이지만, 정치는 그것을 단순한 결과로 바꾸려 한다. 승리라는 단어는 이 복잡한 현실을 단번에 정리해주는 가장 강력한 언어다. 국민에게는 명확한 메시지를 주고, 지지층에게는 확신을 심어주며, 비판의 여지를 줄인다. 길고 불확실한 과정을 설명하기보다 이미 끝난 것처럼 말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승리는 사실이라기보다 만들어지는 프레임에 가깝다.

스스로를 승자로 규정하는 순간, 협상의 구도 또한 달라진다. 상대방에게는 심리적 압박을 주고, 국제사회에는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신호를 보낸다. 실제 상황이 어떻든 간에, ‘우리가 이기고 있다’는 메시지는 협상력의 일부로 작동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자리 잡고 있다. 한 번 시작된 선택을 되돌리지 못하는 인간의 심리, 즉 ‘매몰비용의 오류’다. 이미 많은 자원과 시간, 그리고 정치적 자본을 투입한 상황에서 “이 전쟁은 잘못되었다”고 인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현실이 기대와 다르게 흘러가더라도 그 선택을 정당화할 수 있는 해석을 계속 만들어내게 된다.

1980년대 영국의 인두세 정책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정책은 현실적으로 실행하기 어려웠고 대중의 지지도도 현저히 낮았지만, 영국 정부는 이미 투입한 정치적 비용 때문에 이를 강행했다. 결국 거센 반발과 사회적 혼란 속에서 막대한 비용을 치른 뒤에야 정책을 철회할 수 있었다. 잘못된 선택임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구조가 얼마나 큰 대가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오늘날처럼 세계가 복잡하고 촘촘하게 연결된 시대에는 설령 군사적으로 ‘이겼다’고 하더라도 그 승리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승리를 유지하기 위해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하는 경우가 많다. 전쟁은 단순한 전장 위의 충돌이 아니라 경제와 사회, 환경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총체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재건 비용, 난민 문제, 국제 질서의 불안정, 사회적 분열은 오랜 시간 이어진다. 경제적 손실은 물론이고, 공동체의 붕괴와 신뢰의 파괴, 환경의 훼손까지 감안하면 그 대가는 결코 한쪽만의 부담으로 끝나지 않는다. 설령 승패를 형식적으로 가릴 수 있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은 승자와 패자 모두가 감내해야 한다. 도대체 전쟁에서 말하는 ‘진정한 승리’란 무엇인가?

<한경닷컴 The Lifeist>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경영평론가(ijeong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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