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영원히 뒤처진다.”
1983년 2월 일본 도쿄.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이 반도체산업에 뛰어들겠다고 밝혔다. ‘도쿄 선언’이다. 이 말을 들은 사람 모두 “나중에 망신만 당할 것”이라며 코웃음 쳤다.
당시 메모리 반도체산업의 패권은 일본이 쥐고 있었다. NEC, 도시바의 압도적 기술력은 무너지지 않는 성 같았다. 일본은 도쿄 선언을 무시했다. 한국이 가전제품 조립은 잘하지만 반도체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40여 년이 지난 현재 그들의 예상은 철저히 빗나갔다. 일본 업체들은 사라졌다. 그의 결단은 삼성전자를 세계 최고의 반도체 회사로 이끌었다. 현재 삼성전자와 한국 반도체는 엔비디아, TSMC와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10년 만에 D램 ‘최강자’로
이 창업회장이 반도체에 도전한 이유는 분명했다. 전자산업의 핵심 경쟁력이 ‘기계→부품→반도체’로 이전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D램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D램은 시스템 반도체에 비해 구조가 단순했고 대량 생산 체제를 구축하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삼성전자는 도쿄 선언 10개월 만에 64Kb D램 개발에 성공했다. 세계 세 번째였다. 같은 해 현대전자산업(현 SK하이닉스)도 반도체 전쟁에 뛰어들었다.
삼성전자의 초기 사업 전략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었다. 메모리 시장의 50% 이상을 장악한 일본 기업은 안정적 수익을 기반으로 점진적 기술 개발에 나설 때였다. 삼성은 수익성 악화를 감수하면서도 설비와 인력에 공격적으로 투자했다.
이 때문에 초기 반도체 사업은 적자의 늪에 갇혀 있었다. 빨리 철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러나 이 창업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오히려 경기 용인 기흥 반도체 공장의 생산라인을 6년 동안 2개로 늘리며 공격 경영에 나섰다.
도쿄 선언 이후 결실을 보기까지는 10년이 걸렸다. 1992년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64Mb(메가비트) D램 개발에 성공했다. 이 창업회장의 뒤를 이은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이끈 쾌거였다. 당시 D램 제조사는 원판(웨이퍼)에 미세한 구멍을 뚫어 정보 저장소(커패시터)를 만드는 ‘트렌치’ 공정을 썼다. 이 공정의 한계를 간파한 이 선대회장은 각종 재료를 웨이퍼 위에 쌓아 커패시터를 제조하는 ‘스택’ 공정을 개발하며 기술 초격차 시대의 물꼬를 텄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당시 변방 국가로 여겨지던 한국의 기술 혁신에 일본은 물론 세계 반도체업계가 뒤집어질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삼성전자는 이때부터 D램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라서며 새로운 ‘메모리 거인’의 탄생을 알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 메모리 반도체는 세계 1위 자리를 단 한 번도 내준 적이 없다. ‘치킨게임’…못 버틴 일본, 살아남은 한국변동성이 큰 사이클산업인 메모리 분야의 진짜 승부는 2000년대에 벌어졌다. 메모리는 통상 수요가 늘면 가격이 치솟는다. 이때 제조사가 설비 투자를 늘리고, 이는 공급 과잉을 초래해 가격이 급락한다. D램업계의 하락 사이클은 이 시점에 온다. 문제는 수요가 줄어도 메모리 기업은 생산량을 쉽게 줄일 수 없다는 것이다. 24시간 운영되는 반도체 공장 특성상 급격한 수요 빙하기가 오더라도 생산을 쉽게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치킨게임’이 일어난다. 공급 과잉 상태에서 D램 제조사 간 출혈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메모리업계에는 크게 세 번의 치킨게임이 있었다. 첫 번째는 2000년대 초 닷컴 버블이 붕괴할 때였다. 두 번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세 번째는 2010년대 초 휴대폰 등 주요 전방산업의 수요 정체기가 온 시점이었다.
치킨게임에서 버티지 못한 기업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먼저 일본 기업이 쓰러졌다. NEC와 히타치가 D램 사업을 합쳐 세운 엘피다메모리가 2012년 파산했다. 유럽의 메모리 선봉장이던 키몬다까지 철수를 선언해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공장을 인수했다.
한국 기업은 한 번 더 뚝심을 발휘했다. 삼성전자는 경쟁사가 투자를 축소할 때 연간 설비투자액을 두 배 이상 늘리며 주력 생산지인 경기 화성 캠퍼스를 확장했다. 가격이 내려갈수록 규모의 경제로 버티는 선두 지위를 이용한다는 전략이었다.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의 생존 과정은 더 극적이다. 2001년 현대그룹에서 분리된 이후 하이닉스는 10년간 채권단 관리 체제에 묶여 있었다. 대규모 투자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대신 생산성 개선에 집중했다.
2007년 이건희 선대회장이 삼성전자의 D램 생산성이 하이닉스에 뒤지자 “어떻게 하이닉스보다 못하게 된 거냐”고 질타한 일화는 유명하다. 가까스로 생존에 성공한 하이닉스는 2012년 SK그룹 품에 안기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든든한 지원을 받은 SK하이닉스는 경기 이천, 충북 청주를 중심으로 설비 투자를 대폭 확대했다. 이 같은 투자 전략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마이크론과 함께 세계 메모리 시장을 평정한 기반이 됐다. 이들 기업은 스마트폰과 데이터센터 급증에 맞물린 사상 초유의 D램 호황 사이클을 누리고 있다. ‘AI 심장’ HBM 시장 압도한 SK크고 작은 부침이 있었던 메모리산업은 새로운 변곡점을 맞고 있다. 2022년 오픈AI가 내놓은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가 등장하면서다. AI 서버에는 기존 D램보다 훨씬 높은 성능을 갖춘 고대역폭메모리(HBM)가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다수의 D램 칩을 수직으로 쌓아 용량과 속도를 극대화한 AI용 메모리다.
이 시장에서 먼저 성과를 낸 기업은 2위인 SK하이닉스였다. 2021년 4세대 제품(HBM3)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SK하이닉스는 적층 기술과 공정 고도화로 HBM 시대를 준비했다. 이를 기반으로 엔비디아 공급망에 빠르게 진입했다. 지난해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를 제치고 D램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며 언더독의 반란을 일으켰다.
반면 삼성전자는 성능과 수율 확보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35년 넘게 유지한 시장 지배력을 내줘 자존심을 구겼다. 전력을 재정비한 삼성전자는 ‘재설계’라는 승부수를 띄웠고, 올해 6세대(HBM4) 시장을 이끌고 있다.
AI 열풍은 D램 계약 구조까지 바꿔놓았다. 빅테크가 수년 뒤에도 세계 AI 시장에서 공격적인 인프라 투자가 일어날 것으로 판단하고 분기별로 메모리를 구매하던 방식을 3~5년 장기계약(LTA) 형태로 전환하고 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고객 맞춤형(커스텀) HBM 시대가 도래하며 메모리는 전통적인 소품종 대량 생산 체제에서 다품종 대량 생산 체제로 접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해령 기자 hr.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