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이 주도하는 연구실이 아니라 오로지 학생들만의 힘으로 설계부터 제작까지 모두 해냈다는 점에서 뿌듯했습니다.”
9일 대전 KAIST 태울관에서 만난 기계공학과 재학생 정명우 씨는 자신의 팀이 만든 화성 탐사 로버 ‘GAP-1000’을 선보이며 이같이 말했다. KAIST 학부 로봇 동아리 ‘MR(Microrobot Research)’ 소속인 그는 ‘MR2’라는 팀명으로 세계 최대 대학생 화성탐사 로버 경진대회 ‘2026 유니버시티 로버 챌린지(URC)’에 출전했다. 최근 116개 참가 팀 가운데 상위 38개 팀에 선정돼 본선에 진출했다. KAIST 팀이 본선에 진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 씨는 2024년 유튜브 채널에서 URC 영상을 보고 로버를 개발하고 싶다는 뜻을 품었다. “이 정도 규모의 프로젝트는 처음이었는데,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다양한 학과에서 필요한 팀원을 한 명씩 스카우트해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화성을 탐사하는 용도인 만큼 URC는 높은 수준의 완성도를 요구한다. 구체적으로 △생명탐사 △물품운송 △장비조작 △자율주행 등 4개 미션이 주어진다. 험지를 통과해 물건을 배달하는 과제부터 토양 샘플을 시추해 생명체가 있는지를 탐지하는 작업까지 수행해야 한다. 기계공학과, 전기및전자공학부, 산업디자인학과 등 다양한 전공의 학부생 13명이 한데 모여 협업했기에 가능한 프로젝트였다.
GAP-1000은 극한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운용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5kg 이상의 물체를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는 6자유도 로봇 팔을 장착해 복잡한 장비 조작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내달 열리는 본선에서는 화성과 가장 비슷한 환경이라고 평가받는 미국 유타주 사막에서 극한의 테스트가 이뤄진다.
1년6개월간의 제품 개발 단계에서 가장 큰 장벽은 돈이었다. 학생들끼리 진행하는 프로젝트인 만큼 학과 지원 외에 연구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동아리에 들어오는 외주 사업을 따서 이 자금을 로버 개발에 쏟아부었다. 부모에게 일부 손을 벌리거나 주식투자로 번 돈까지 모아 비용을 댔다. 학업과 병행하다 보니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정 씨는 “지난 겨울방학에는 ‘비상 상황’을 선포하고 팀원들과 며칠씩 동아리방 소파에서 쪽잠을 자며 로버를 기한 내에 완성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정 씨는 어린 시절부터 ‘로봇 마니아’였다. 코로나19로 외출이 차단된 고등학생 시절 집에 몇 달씩 틀어박혀 3D 프린터로 4족 보행 로봇을 만들었다. 로봇이 좋아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이번 출전을 계기로 로봇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싶다는 목표도 생겼다. 정 씨는 “최근 생성형 AI를 지나 피지컬 AI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며 “세상이 변할 때 나서야 다음 세대에 굵직한 역사를 남길 수 있지 않겠느냐는 고민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전=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