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시작된 이란 전쟁이 일단 2주간의 휴전으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미국과 이란 모두 전쟁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출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파키스탄의 중재로 양측은 4월 10일부터 이슬라마바드에서 본격적인 양자 협상을 시작한다. 두 나라는 모두 자국이 승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양측이 동의했다는 ‘협상의 기초’에 대해 엇갈리는 부분이 적지 않아 실제 협상과정이 순탄치 않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4월 7일 오후 6시30분경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휴전 계획을 밝혔다. 앞서 7일 오후 8시(한국시간 8일 오전 9시)까지 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경우 이란의 발전소와 교량 등에 대규모 폭격을 예고한 트럼프 대통령은 오전까지만 해도 트루스소셜에서 “오늘 밤 한 문명 전체가 사라져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적었다. 실제로 그가 폭격을 결정할 수 있다는 공포가 강해지면서 폴리티코는 워싱턴이 “칼날 위를 걷는 듯하다”며 “종말론적인 분위기”라고 묘사했다.
‘최후통첩’ 기한을 불과 90분 남기고 극적으로 휴전을 선언한 배경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의 완전하고, 즉각적이며, 안전한 개방에 동의하는 것을 조건으로 본인은 2주간 이란에 대한 폭격 및 공격을 유예하는 데 동의한다”고 했다. 또 “이는 양측 모두의 휴전”이라며 “이러한 결정을 내리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모든 군사적 목표를 달성하고 초과 달성했으며 이란과의 항구적 평화 및 중동의 평화에 관한 최종 합의에 상당히 진전된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우리는 이란으로부터 10개 항의 제안을 받았으며 이를 협상의 실행 가능한 기반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미국과 이란 간의 과거 주요 쟁점들 거의 대부분에 대해 합의가 이루어졌으며 2주간의 기간은 최종 합의를 완성하고 공식화하는 데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합의의 기초’에 대한 엇갈린 해석
이란도 휴전 계획에 동의했다. 압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엑스(X)에 “이란에 대한 공격이 중단될 경우 이란은 방어 작전을 중단하며 2주 동안 호르무즈해협의 안전한 통항은 이란군과의 협조 및 기술적 제한 사항을 고려하는 조건하에 가능할 것”이라는 성명서를 냈다. 아라그치 장관은 “이란 최고국가안전보장회의를 대표해” 이같이 선언한다고 적었다. 뉴욕타임스 등은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이 휴전안을 최종 승인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란 측 통신사들의 보도에 따르면 이란 최고국가안전보장회의 명의로 발표된 성명서는 전혀 다른 뉘앙스를 담고 있었다. 이란 반관영 통신사 메흐르통신 등이 공개한 성명서에 따르면 이란 측이 제시한 주요 요구 사항은 ▲미국의 비침략 원칙 보장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이란의 통제 지속 ▲우라늄 농축 권리 인정 ▲모든 1차·2차 제재 해제 ▲유엔 안보리 및 IAEA 이사회 결의 전면 종료 ▲이란에 대한 손해배상 ▲역내 미군 전투 병력 전면 철수 ▲레바논 저항 세력(헤즈볼라)을 포함한 전 전선 전쟁 중단(이스라엘의 공습 중단) 등이다.
아울러 10일부터 이슬라마바드에서 시작되는 협상에 관해 “미국 측에 대한 완전한 불신 속에 시작될 것이며 이란은 이 협상에 2주간의 시간을 할애할 것”이라고 적었다. 또 “이 기간은 양측의 합의에 따라 연장될 수 있다”고 했다. 성명은 “우리의 손은 방아쇠 위에 있으며 적이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전력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경고로 마무리됐다.
이란 언론 “핵무기 포기 약속 포함”
또 다른 이란 반관영 통신사인 파르스통신은 이와 비슷하지만 좀 더 현실적인 10개 항을 보도했다. 파르스통신이 보도한 10개 항 중 이란 및 대리세력에 대한 공격 중단, 미군 철수, 이란에 대한 제재 해제, 손해보상 등의 내용은 국가안전보장회의 성명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하지만 다른 부분도 적지 않다. 일단 국가안전보장회의는 미국이 이란의 “핵 농축을 수용했다”고 주장했다. 파르스통신은 반면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대신 미국도 이란의 우라늄 농축 권리를 일부 인정하는 보다 진전된 내용이 담겨 있다고 보도했다. 또 이번 합의 내용 전체를 유엔 공식 결의안으로 채택해 국제법상 구속력을 부여할 것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파르스통신의 취재 내용은 또 이란이 역내 국가들과 양자 및 다자 평화협정을 맺기 위한 협상을 추진한다는 내용을 포함한다. 이는 협상을 이끌고 있는 재러드 쿠슈너(트럼프 대통령의 맏사위)가 트럼프 1기 정부에서 추진한 ‘아브라함 협정’의 후속작이 될 수 있다. 2020년에 체결된 아브라함 협정은 이스라엘은 서안 합병을 중단하고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등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호르무즈해협에 관한 ‘이란의 통제’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도 국가안전보장회의의 내용과 파르스통신 취재 내용은 뉘앙스에 차이가 있다. 국가안전보장회의는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이란의 통제 지속”이라는 강경한 표현을 썼다. 통행세를 걷겠다는 뜻으로 들리는 대목이다.
반면 파르스통신은 “이란의 감독과 명확한 규칙하에 2주간 제한적으로 호르무즈해협을 통한 선박 통과 허용, 안전 통과 프로토콜 적용”이라고 보다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수수료 징수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이러한 프로토콜의 대가로 일정한 금액을 징수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호르무즈 통행세 실현 가능성도
10개 항에 대한 서로 다른 버전이 존재하는 것은 이란 내 강경파와 협상파 간의 견해차를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회색지대 내에서 양측이 얼마나 타협 가능한 지점을 찾을지가 이번 협상의 관건이다.
핵심 쟁점에 대해 서로 표현이 다르지만 일단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통제’ 혹은 ‘감독’ 권한을 이란이 갖는다는 점, 핵 농축에 대한 권리를 미국이 일부 수용했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이를 종합해 볼 때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해협의 ‘자유로운 항행’을 조건으로 휴전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제한적인 통행세 체제를 도입하는 것을 용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핵 농축을 일정 수준까지만 허용한다고도 해석 가능하다.
AP통신은 협상에 관여한 역내 관계자를 인용해 이란과 미국이 동의한 2주간의 휴전 계획에 호르무즈해협 통과 선박에 대한 통행료 부과 계획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해당 관계자에 따르면 이란은 징수한 통행료를 전후 재건 비용으로 사용할 계획이며 오만의 사용 목적은 아직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밤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미국은 호르무즈해협의 통행 혼잡 해소를 지원할 것”이라며 “큰 경제적 이익이 창출될 것”이라고 적었다. 또 “이란은 재건 과정을 시작할 수 있고 우리는 모든 종류의 물자를 적재하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대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6일 기자회견에서도 “차라리 우리가 통행료를 부과하는 게 어떻겠느냐”며 “우리가 통행료를 징수하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란에 “합의의 일부로서 석유를 비롯한 모든 물자의 자유로운 통행을 요구할 것”이라고 덧붙였지만 미국이 해협을 지키는 모종의 비용을 거둘 수 있다고 암시한 셈이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복병은 이란 석유자원에 대한 미국의 욕심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석유에 대한 통제권을 갖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4월 6일 부활절 행사에서 “선택할 수 있다면 석유를 가져오고 싶다. 거기에 있으니까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도 “미국은 지난 100여 년 동안 한 번도 전리품을 가져가지 않았지만 나는 사업가”라며 “전리품은 승자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월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체포 작전 이후 석유를 가져와 전쟁 비용의 몇 배나 되는 금액을 이미 회수한 것은 그의 신념을 강화하는 요인이다. 이란이 이러한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협상 과정에서 이란에 대한 통행료를 허용하는 대가로 미국이 이란의 재건 과정이나 자원 개발과정에서 일정 지분을 갖겠다고 주장할 수 있다.
워싱턴=이상은 한국경제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