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투자기관들 전주 극비 답사…'지방이전' 압박에 물밑 대응

입력 2026-04-06 16:27
수정 2026-04-07 13:50
이 기사는 04월 06일 16:27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주요 기관투자가들이 최근 전북 전주를 극비리에 방문해 오피스와 부지, 정주 여건 등을 점검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의 지방 이전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실제 기관이 현장 조사에 나서면서 지방 이전 논의가 구상 단계를 넘어 실행 국면으로 옮겨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복수의 기관투자가가 최근 전북혁신도시가 있는 전주를 찾아 업무 환경과 정주 여건 등을 살폈다. 표면적으로는 전주 만성동 국민연금공단 본부 방문 일정이었지만, 국민연금과의 별도 협업이나 구체적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복수 기관들이 전주에 내려와 실제 입지 여건을 둘러본 것으로 안다”며 “적어도 한두 곳, 많게는 세 곳 안팎의 투자기관이 비슷한 방식으로 전주를 오간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이번 움직임은 단순 답사와는 결이 다르다는 평가다. 그동안 공공기관 지방 이전론은 지역 정치권과 전라북도의 장기 구상 차원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돼 왔지만, 실제 기관이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현장을 찾아 부동산과 생활 인프라를 직접 확인한 정황이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정책 변화 가능성에 대비한 사전 점검으로 보고 있다. 향후 이전 압박이 현실화할 경우에 대비해 미리 입지와 업무 환경을 확인하려는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전주의 금융허브 구상은 최근 다시 속도가 붙고 있다. 전라북도는 올해 1월 금융위원회에 전주를 제3금융중심지(금융타운)로 지정해 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했다. 서울과 부산에 이어 전주를 자산운용 중심 거점으로 키우겠다는 취지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이전 이후 글로벌 금융회사와 자산운용사들이 속속 전주에 거점을 마련한 데다 골드만삭스의 전주 사무소 설치 논의까지 더해지면서 관련 구상도 힘을 받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추진 의지를 잇달아 내비친 점도 기관투자가를 움직이게 한 배경으로 꼽힌다.

현재 이전 논의의 중심에는 군인공제회, 행정공제회, 경찰공제회, 과학기술인공제회, 대한소방공제회, 한국교직원공제회, 건설근로자공제회 등이 거론된다. 이들 기관은 대체투자와 사모펀드, 인프라, 부동산 시장에서 굵직한 자금을 집행하고 있다. 전라북도와 정치권이 전주 금융 생태계 조성을 위한 핵심 유치 대상으로 공제회를 지목한 이유다.

하지만 실제 이전까지 이어지기에는 제약이 적지 않다. 공제회는 국가 재정이 아니라 회원 출연금으로 운영되는 상호부조 성격의 특수법인이다. 일반 공공기관과 같은 잣대로 강제 이전을 추진하는 것은 무리라는 반론이 나오는 이유다. 공제회 노조가 강하게 반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울 여의도와 강남에 밀집한 운용사, 증권사, 회계법인, 법무법인 네트워크와의 연결이 약해지면 투자 경쟁력과 수익률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지방 이전 과정에서 핵심 운용 인력이 이탈할 가능성 역시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법적 쟁점도 남아 있다. 일부 공제회는 정관 변경만으로 본사 이전이 가능하지만 기관에 따라서는 법 개정이 필요한 곳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주소 이전과 조직 이전이 전혀 다른 사안이라는 점이다. 투자본부와 리스크관리, 의사결정 조직, 핵심 운용 인력까지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면 본점 소재지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실질적 이전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공제회 이전의 핵심은 간판 이전이 아니라 운용 조직 이전이라는 것이다.

한 공제회 관계자는 “공제회 이전의 본질은 간판이나 주소가 아니라 운용 조직을 정말 움직일 수 있느냐에 있다”며 “현지 조사가 시작됐다는 점에서 논의가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간 것은 맞지만 실제 이전까지는 여전히 변수가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전주 이전은 정치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여도 투자 실무 관점에선 사실상 자충수에 가깝다”며 “억지로 추진하면 공제회 경쟁력만 갉아먹는 결과로 끝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