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시향 상임지휘자 이명근 "음악이 스스로 제 자리를 찾도록 하고 싶어요"

입력 2026-04-06 14:01
수정 2026-04-06 14:21


“투박하지만 정직한 음악을 하는 예술단체예요.”

인구 25만 명 규모의 중견 도시 군산은 산업과 함께 문화가 성장한 대표적 도시다. 서해안 항구를 기반으로 생활권이 형성된 군산에 새만금 개발과 산업단지가 조성되며, 문화·예술에 대한 공공 투자가 확대됐다.

지역 산업 발전은 시민의 문화 향유 기회 확대로 이어졌다. 1987년 창단한 군산시립교향악단 역시 그 흐름 속에서 탄생한 시립 예술단이다. 이들은 한국형 공공 메세나의 모범적 사례였다.

군산시향은 올해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무대를 찾는다. 2016년 이후 10년만이다.

6일, 군산예술의전당 연습실에서 군산시립교향악단 이명근 상임지휘자를 만났다. 2022년부터 군산시향을 이끌고 있는 이명근 지휘자는 군산시향을 “기교적으로 세련된 사운드를 추구하기보다 음악에 대한 진심을 전달하는 오케스트라”라고 소개했다.



군산시향의 올해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프로그램은 라벨의 <라 발스>와 첼리스트 송영훈의 협연으로 연주하는 차이콥스키의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교향곡 <만프레드>다. 그는 이번 공연의 주제를 “각자의 위치에서 느끼는 동경에 대한 이야기”라고 정의했다.

라벨의 라 발스는 화려한 왈츠에 대한 동경으로 출발하지만, 음악은 곧 균형을 잃으며 무너진다. 현악의 미세한 흐름 위로 관악기가 저마다의 소리를 내고, 템포가 어긋나며 질서가 흔들린다.

이명근은 “첫 번째 곡, 라벨의 <라 발스>는 아름다운 왈츠처럼 들리지만, 그 내부에서 균열이 시작된 순간을 담은 광기적 정서의 음악”이라며 “순수한 춤곡이 아니라,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제국주의 질서가 균열되는 순간을 담은 음악”이라고 덧붙였다.

그에게 <라 발스>는 단순한 레퍼토리가 아니라 이번 공연의 출발점이다. 10년 만에 교향악축제 무대로 돌아오는 군산시향이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긴장과 변화를 만들어내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의도가 담겨 있다. 그는 “이 무대가 기존의 국내 오케스트라 질서에 작은 자극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차이콥스키의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작곡가 자신의 동경을 넘어 그가 꿈꿨던 '이상향'에 대한 아름다움이 악상에 반영된 음악이다. 러시아 출신의 차이콥스키가 선망했던 서유럽의 고풍스러운 이미지와 모차르트의 음악에 대한 동경심을 품은 작품이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은 외부 세계에 대한 동경을 넘어, 인간 스스로의 내면과 마주하는 이야기입니다."

군산시향이 선정한 프로그램의 마지막은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만프레드>다. 이 작품은 형식 중심의 절대음악의 틀을 벗어나, 문학적 서사를 음악으로 옮긴 교향곡이다. 1817년 발표된 바이런의 동명 희곡을 바탕으로, 알프스에 은둔한 한 인간이 죄의식과 고독 속에서 자기 파멸로 치닫는 내면을 그린다.



이명근은 한국과 독일에서 비교적 순탄하게 지휘자로서의 기반을 다졌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정치용 교수에게 배워 프로 지휘자의 길에 들어섰고, 독일 데트몰트 음대에서는 오페라 지휘자, 칼 하인츠 블뢰메커 교수에게 정확한 비트와 여러 지휘 동작의 기능을 배웠다. 하지만 미국 피바디 음악원에서 그는 전혀 다른 음악적 세계를 경험했다.

“기술적으로 음악을 지휘하는 것을 넘어, 어떻게 지휘해야 단원들의 에너지를 끌어낼 수 있는지 배웠습니다. 오케스트라의 사운드를 5% 풍성하게 하려면, 지휘자는 50%의 열정을 쏟아야 하는거죠.”

미국에서 이명근에게 지휘를 가르친 스승은 국내에도 잘 알려진 거장 구스타브 마이어와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 지휘자 마린 알솝이다. 특히 알솝은 2022년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우승한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결선 무대의 지휘자로 국내 음악 팬들에게도 익숙하다. 이명근은 2005년 피바디 음대 지휘과 교수로 부임한 그의 첫 한국인 제자다.

“정확한 템포를 맞추는 것보다, 음악이 스스로 제 자리를 찾아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이 지휘라고 배웠습니다. 저는 그 역할에 충실하고 싶습니다.”

이 철학은 군산시향과의 작업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완벽함보다 전달력을, 기술보다 진정성을 우선한다. 테크닉적으로 완벽하지 않더라도, 진심이 느껴지고 오래 기억되는 연주를 목표로 연습중이다.

이번 무대는 10년의 시간을 넘어 교향악축제로 돌아온 군산시향이 어떤 음악으로 자신을 증명할지 보여주는 자리다. "관객의 기억에 오래 남는 음악을 전달하겠다"는 이명근 지휘자의 의지가 담긴 공연은 15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조동균 기자 chodog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