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은 끝 아닌 시작…제도 변화 맞춰 생존 전략 다시 짜야”[자본시장을 움직이는 사람들]

입력 2026-04-03 14:33
이 기사는 04월 03일 14:33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내 자본시장의 공기가 바뀌고 있다. ‘진입’ 중심이었던 코스닥 시장의 패러다임이 ‘선별과 퇴출’로 급격히 이동하면서다. 상장만 하면 탄탄대로였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상장 폐지 리스크가 상시 관리 영역으로 들어왔고, 시가총액이 일정 수준에 미달하면 즉시 퇴출당하는 ‘속도전’이 시작됐다.

급변하는 제도 변화 속에서 기업들은 어떤 생존 전략을 짜야 할까. 한국거래소에서 상장과 퇴출 규정을 만들고 집행했던 '베테랑'들이 모인 법무법인 화우의 정운수 고문(전 거래소 부이사장), 김성태 고문(전 거래소 상무), 김종일 수석전문위원(전 거래소 부장), 정성빈 변호사를 만났다.
“상장 폐지 ‘시간 끌기’ 전략 더는 안 통해”최근 금융당국과 거래소는 상장 폐지 절차를 기존 3심제에서 2심제로 단축했다. 정 고문은 이를 “시장 이미지 쇄신과 밸류업을 위한 결단”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그간 기업 회생 기회를 충분히 준다는 명목으로 3심제를 운영했지만 절차가 너무 길어지는 부작용이 컸다”며 “저성과 기업의 퇴출 지연은 시장 전체의 신뢰 저하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제도 변화로 기업 입장에서 가장 피부에 와닿는 변화는 시간이다. 김성태 고문은 “과거엔 개선 기간을 포함해 최대 2~4년까지 시간을 벌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 기간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며 “영업 실적을 정상화하거나 인수합병(M&A)을 통해 체질을 바꾸는 작업을 '골든타임' 안에 속도감 있게 완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상장폐지 결정이 난 뒤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으로 시간을 벌던 관행도 무의미해질 전망이다. 정성빈 변호사는 “최후의 수단으로 가처분 신청을 해왔지만 전담 재판부 신설 등으로 결론이 매우 빨라질 것”이라며 “가처분은 절차적 하자가 없는 한 인용되기 어려운 만큼, 이제는 법적 대응보다 실질적인 경영 정상화 의지를 숫자로 증명하는 것이 유일한 살길”이라고 강조했다.

올 하반기부터 코스닥 시장에 적용되는 ‘시가총액 200억원 미만’ 퇴출 기준은 시장에 큰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정 고문은 “시가총액은 기업의 현재 가치뿐만 아니라 미래 가능성을 보여주는 척도”라며 “단순히 주가가 낮다는 이유로 퇴출당하는 억울한 상황을 피하려면 기업이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기 위한 노력을 절실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코스닥 시장에 쏟아지는 액면병합 행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정 고문은 “단순히 '동전주'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기술적 대응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비용 문제로 기업설명(IR)을 뒤로 미루는 중소벤처가 많지만 주주 소통은 기업가치를 높이는 ‘홍보 전략’이자 ‘생존 요건’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장은 목적지가 아닌 새로운 출발선”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IPO에 임하는 오너들의 ‘마인드셋’ 변화를 주문했다. 상장 그 자체를 성공의 끝으로 보는 시각이 상장 폐지 리스크를 키운다는 지적이다.

정 고문은 “상장을 준비하던 때의 간절함으로 상장 이후에도 주주 이익 보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상장 이후의 성장 전략과 주주 환원 계획이 상장 전부터 정밀하게 설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지배구조 정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 등 규제 환경이 주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며 “과거엔 운 좋게 넘어갔던 내부 거래나 불투명한 의사결정이 이제는 상장 유지를 위협하는 핵심 리스크가 됐다”고 짚었다.

거래소 출신 전문가들이 포진한 법무법인 화우는 규정의 행간을 읽는 자문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김 수석위원은 “중소벤처기업은 최대주주의 성향이나 외부 관계 때문에 시장에서 오해를 받아 상장이 불발되거나 실질 심사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며 “거래소의 디테일한 심사 기준을 바탕으로 기업의 약점을 치유하고 정상적인 트랙으로 복귀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김 고문은 “거래소에 있을 때는 규제 측면에서 바라봤지만, 법무법인에서는 기업의 애로사항을 청취하며 소통을 중재하는 매력이 있다”며 “투명 경영을 저해하는 의도적인 부정은 엄단하되 경영상의 실수는 예방하고 치유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