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극으로 보는 '지킬앤하이드'…우리 안의 여러 얼굴에 '섬뜩'

입력 2026-03-31 10:57
수정 2026-03-31 11:09


연극 ‘지킬앤하이드’의 무대는 단출하다. 문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고, 이밖에는 옷걸이와 책걸상이 전부다. 무대를 메워 나가는 것은 배우 한 명이다. 그는 혼자서 지킬과 하이드는 물론 지킬의 친구이자 변호사인 어터슨, 먼 친척 엔필드, 지킬의 집사 풀, 지킬의 지인 레니언 박사 등을 모두 연기한다.

‘지킬앤하이드’가 지난 16일 대학로에서 막을 올렸다. 영국 극작가 게리 맥네어가 쓴 이 작품은 재작년 영국 에든버러에서 초연된 뒤 작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연됐다. 원작 소설을 1인극 형식으로 재구성해 서사를 풀어내는 독특한 무대로 주목 받았다.

작년 캐스팅된 고윤준·백석광·강기둥·최정원이 각기 무대에 혼자 올라 펼친 ‘연기 차력쇼’가 재연에 한 몫을 했다. 올해는 배수빈·정동화·정욱진·차정우가 관객들을 만난다. 연출은 작년에 이어 이준우가 이어간다.

이 작품은 지킬 박사의 친구이자 변호사인 어터슨의 시선을 따라 선한 인격의 지킬과 그의 어두운 내면에서 탄생한 하이드를 추적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지난 24일 공연에서 정욱진은 하이드의 실체를 여러 인물 연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했다. 어터스의 시선을 따라 엔필드, 레니언 등의 증언이 쌓이며 보이지 않는 지킬의 윤곽이 점차 또렷해졌다.



초반부 어터슨은 차분한 톤으로 사건을 정리해 나가며 관객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인물 간 전환은 말투와 자세의 변화로 이뤄진다. 무대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전환되면서 관객의 등골도 서늘해진다. 인물을 또렷하게 구분하게 하는 동시에 여러 인물의 증언으로 지킬의 실체가 서서히 그려진다.

문 하나를 중심에 둔 같은 공간이 계속 반복되지만, 인물과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불필요한 장치 없이도 장면이 충분히 살아나는 이유다. 공연에는 ‘제4의 벽’도 없다. 관객은 이야기를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사건을 함께 목격하고 증언을 듣는 인물로 무대에 끌려 들어간다. 무대가 단순한 만큼 배우의 연기가 더 또렷하게 보인다.

공연은 ‘당신 안의 하이드는 누구입니까’라는 질문과 함께 막을 내린다. 한 배우가 여러 인물을 오가는 구조는 이 질문을 더 설득력 있게 만든다. 무대 위에서 인물이 계속 바뀌는 순간들처럼 한 사람 안에도 서로 다른 모습이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공연은 서울 동숭동 링크더스페이스에서 열린다. 6월 7일까지.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