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이 명품이 될 수 있을까…'대륙의 포르쉐'가 온다 [조두현의 테이스티드라이브]

입력 2026-04-02 10:23
수정 2026-04-02 10:48
추워도 좋았다. 최근에 살을 에는 듯한 ‘칼추위’를 뚫고 중국 다롄(大連)을 여행했다. 다롄은 중국에선 2선 도시인데, 인구는 500만 명 이상이다. 도로의 풍경은 놀랍도록 세련된 느낌이다.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매연을 뿜어내는 낡은 수입차와 합자 브랜드 차가 주를 이뤘던 것 같은데, 지금은 미끈한 전기차들이 특유의 윙윙거리는 모터 소리만 남긴 채 도로를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다.



중국의 일상은 이미 ‘초연결’ 그 자체였다. 모든 결제는 QR코드로 이루어졌고, 앱으로 호출한 택시를 잡는 데는 5분을 넘기지 않았다. 스마트폰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완벽한 디지털 사회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거대한 복합 쇼핑몰 안이었다. 쇼핑몰 내 가장 목 좋은 곳에는 각양각색의 중국 브랜드 전기차들이 반짝거리며 전시되어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기시감이 드는 디자인도 있었지만, 그런 건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이미 글로벌 최고 수준으로 상향 평준화된 자동차 하드웨어와 디자인에, 중국 특유의 막강한 IT 기술을 융합해 그들만의 완전히 새로운 ‘스마트 디바이스’로 진화시킨 차들이 셀 수 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샤오미와 화웨이가 내놓은 차들이 기대 이상이었다. ‘삼성전자와 엘지전자도 마음만 먹으면 자동차를 만들 수 있겠네?’라는 생각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는 당장이라도 손에 잡힐 듯한 엔트리 모델도 있었지만,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을 만큼 웅장하고 고급스러운 럭셔리카들도 즐비했다. 그 화려한 자태를 홀린 듯 바라보며 순간 스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차들이 한국 자동차 시장에 쏟아져 들어온다면?’ 그 결과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차와 테슬라 위주의 견고했던 수입차 시장에 또 금이 가겠다는 첫 설렘과, 더 첨단의 새로운 모빌리티 혁명을 마주할 수 있다는 두번째 설렘이 순차적으로 밀려왔다. 중국차의 새로운 럭셔리 보법, 기계공학에서 ‘초연결 지능’으로다롄 쇼핑몰에서 느꼈던 직감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거대한 내수 자본력과 국가적 공급망을 바탕으로 성장한 중국 완성차 업계는 이제 서구권의 전통적인 프리미엄 브랜드들과 직접 경쟁하는 ‘차이니스 하이엔드(Chinese High-end)’ 시대를 열었다.


과거 서구권 브랜드들이 8기통, 12기통 대배기량 엔진의 정밀도와 완벽한 기계적 밸런스를 프리미엄의 기준으로 삼았다면, 현재 중국의 럭셔리 트렌드는 ‘소프트웨어 역량과 차의 지능화(Intelligence)’로 완전히 이동했다. 막강한 컴퓨팅 파워, 고도화된 자율주행(NOA), 스마트폰과 매끄럽게 연동되는 스마트 콕핏 등 IT 기기에 열광하는 젊은 신흥 부유층의 취향을 정확히 저격하고 있다. 상식을 파괴하는 대륙의 하이엔드한국 소비자에게 중국차는 여전히 상용차나 저가 소형차에 머물러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는 빙산의 일각만 본 셈이다. 국내에 출시될 확률은 거의 없지만, 중국 국가 권력의 상징이자 최고 지도자들의 의전차인 홍치(Hongqi)의 궈리(Guoli)는 공식 출시 가격만 718만 위안(한화 약 15억 원)이다. 롤스로이스가 양털과 소가죽으로 영국의 풍요로움을 뽐낸다면, 홍치는 실내 도어 핸들에 순수 옥(Pure Jade)을 통째로 조각해 넣고, 장인의 수공예 옻칠 우드를 적용해 중국의 역사적 헤리티지와 예술성을 럭셔리의 전면에 내세운다.


현실적인 럭셔리카도 있다. BYD가 론칭한 호화 브랜드 양왕(Yangwang)의 플래그십 SUV U8은 독립 제어되는 4개의 초고성능 모터를 통해 1180마력의 출력을 뿜어낸다. 거대한 차체가 제자리에서 360도 도는 ‘탱크 턴(Tank Turn)’은 물론, 수심 깊은 곳에서 바퀴의 회전력만으로 물살을 가르는 플로팅 모드까지 지원한다.

이미 국내에도 소개됐던 하이퍼카 U9도 있다. 지능형 서스펜션과 시속 100㎞까지 가속에 2초대의 폭발적 성능을 자랑한다. U9에 앞서 지커(Zeekr)에도 001 FR이란 모델이 있다. 테슬라 모델 S 플래드와 포르쉐 타이칸 터보를 정조준하며 내놓은 고성능 전기 슈팅브레이크 모델이다. 최고출력 1265마력의 하이퍼카급 합산 출력과 역시 시속 100㎞까지 2초대의 압도적인 가속력을 뽐낸다.


이처럼 파괴적 혁신과 고성능 럭셔리로 무장한 중국차 브랜드의 다음 타깃은 바로 까다로운 한국 시장이다. 차이나 디스카운트라는 견고한 심리적 장벽을 넘기 위해 이들은 맹목적인 가격 경쟁력을 과감히 배제하고, 각 브랜드만의 고유한 철학과 기술력으로 프리미엄을 새롭게 정의하며 정면 승부를 예고하고 있다. BYD, 최고의 럭셔리는 ‘압도적 안전’지난 1월과 2월 BYD는 국내에서 총 2304대를 팔았다. BMW, 메르세데스-벤츠, 테슬라, 볼보의 뒤를 이어 수입차 브랜드 5위의 자리에 성큼 올라섰다. 현재 수입 전기차 시장에 다크호스로 급부상 중인 BYD는 단순한 완성차 조립 기업을 넘어 배터리 셀부터 자동차용 반도체까지 자체적으로 생산한다. 즉, 거대한 ‘수직 계열화’를 완성한 글로벌 딥테크 기업이다. 이렇게 철저한 자체 공급망 통제력은 치열한 글로벌 전기차 가격 경쟁 속에서 원가를 획기적으로 절감하고 높은 수익성을 방어한다. 아울러 전 세계 친환경차 판매량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켜내는 핵심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BYD는 단기적인 출혈 경쟁으로 ‘저가 브랜드’로 낙인찍히는 것을 철저히 경계한다. 향후 덴자, 양왕 같은 하이엔드 라인업까지 한국에 선보이기 위한 리브랜딩 전략의 핵심은 바로 ‘안전’이다. BYD는 얇고 긴 자사의 ‘블레이드 배터리’를 뾰족한 쇠바늘로 찌르는 가혹한 관통 실험에서 연기조차 나지 않는 열폭주 저항성을 입증했다. 이를 통해 한국 소비자가 지닌 전기차 화재에 대한 뿌리 깊은 불안감을 정면으로 돌파하고 있다. 이처럼 전기차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깨부수고, 한국의 프리미엄 수요를 설득할 전략에 대해 BYD 코리아 홍보팀 김선웅 매니저는 명확한 비전을 제시했다.

“블레이드 배터리 발표 당시 BYD 왕촨푸 회장이 강조한 ‘Safety is the greatest luxury of an EV(안전은 전기차의 최고 가치)’라는 메시지는 BYD가 지향하는 프리미엄의 방향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BYD가 개발하는 모든 혁신 기술의 궁극적 목표는 ‘안전 확보’입니다.” 지커(Zeekr), ‘제3의 거주 공간’에서 누리는 궁극의 환대BYD에 이은 다음 주자는 중국 지리(Geely) 그룹 산하의 프리미엄 브랜드 지커다. 지커의 보법은 BYD와는 조금 다르다. 브랜드 출범에 앞서 프리미엄 수입차를 다뤄본 파트너들부터 찾았다. 에이치모터스, 아이언모터스, KCC오토 등 국내 최고 수준의 수입차 메가 딜러사들과 선제적으로 손을 잡고 전시장과 AS 네트워크 구축부터 시작했다. 나아가 지커는 BMW, 제네시스에 익숙한 한국 고객에게 가격이 아닌 대체 불가능한 경험을 셀링 포인트로 제시하고자 한다. 지커 코리아 권오상 홍보팀장은 지커만의 프리미엄을 이렇게 정의했다.


“각 국가의 자동차는 고유한 환경에 맞춰 진화합니다. 한계 없는 속도를 추구하는 독일의 아우토반, 광활한 대륙을 횡단하는 미국의 크루징 환경처럼 말이죠. 그렇다면 전동화와 스마트 모빌리티가 가장 빠르게 확산된 중국에서 자동차는 어떻게 진화했을까요? 지커는 자동차를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운전자와 승객이 가장 오랜 시간 머무는 ‘제3의 거주 공간(The 3rd Living Space)’으로 새롭게 정의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커가 정의하는 프리미엄의 핵심은 ‘궁극의 환대(Hospitality)와 따뜻함’이다. 하이엔드 소비자일수록 차가운 기계적 제원을 넘어, 나와 내 가족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가 중요하다. 동급을 압도하는 거주성, 최고급 소파를 연상케 하는 안락함, 2열 VIP 승객의 절대적인 편의성 등 지커의 모든 실내 경험과 부드러운 주행 질감은 탑승자를 향한 배려에 맞춰져 있다.

또한, 스웨덴 예테보리와 상하이 글로벌 디자인 센터에서 완성한 ‘강력한 우아함(Powerful Elegance)’ 철학도 큰 축을 이룬다. 이러한 방향의 결과가 이미 시장에서 숫자로 증명되고 있다. 권 팀장은 “지커의 플래그십 SUV인 9X는 치열한 중국 내수 시장의 50만 위안(약 1억 원) 이상 대형 SUV 세그먼트에서 4개월 연속 1위를 차지하며 가치를 인정받았다”며 “지난 2월 글로벌 판매량만 봐도 전년 대비 70% 올랐다”고 설명했다. 대한민국, 글로벌 패권의 리트머스 시험지다롄의 쇼핑몰에서 느꼈던 그 막연한 설렘은 이제 한국 도로 위에서 현실이 될 준비를 마쳤다. 한국의 소비자들은 점차 자동차를 선택할 때 브랜드 배지의 국적이나 과거의 유산에만 얽매이지 않는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압도적인 디지털 상품성과 내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하는 새로운 경험 가치가 입증된다면 기꺼이 지갑을 열 준비가 되어 있다. 물론, 한국 사회 저변에 겹겹이 쌓인 ‘차이나 디스카운트’를 단기간에 뛰어넘는 것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철저한 품질 관리와 신속한 부품 수급 등 진정성 있는 소비자 신뢰 구축이 묵묵히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전통적 럭셔리의 문법을 해체하고, 안전과 환대라는 새로운 차원의 프리미엄을 제시하는 중국의 하이엔드 전기차들. 이들이 과연 도도하고 까다로운 한국 오너들의 차고지에 BMW, 포르쉐와 나란히 자리 잡을 수 있을까? 곧 막이 오를 한국 수입차 시장 내의 치열한 각축전은 향후 10년 글로벌 자동차 산업 생태계가 어떻게 재편될지 미리 엿볼 수 있는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변곡점이 될 것이다.

조두현 위트웍스 대표(모빌리티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