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후티의 '홍해 위협'

입력 2026-03-29 17:45
수정 2026-03-30 00:07
중동 아라비아반도 남단과 아프리카 대륙 사이의 해협, 바브엘만데브는 아랍어로 ‘눈물의 문’이라는 뜻이다. 암초가 많고 물살이 강해 배가 자주 난파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수에즈운하로 들어가는 관문인 바브엘만데브는 세계 해상 교역의 12%를 차지하는 요충지다. 예멘 무장조직 후티반군은 과거 여러 차례 이곳을 틀어쥐고 세계 물류의 목줄을 좼다.

후티는 최근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에 공식 참전을 선언하며 이스라엘 남부를 향해 탄도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란의 대리 세력인 ‘저항의 축’ 핵심인 후티가 전면전에 뛰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달 전 시작된 이번 전쟁이 예멘과 홍해 지역까지 번지는 ‘확전의 늪’에 빠져들 위기다.

시장엔 비상이 걸렸다. 호르무즈해협이 이란에 의해 봉쇄된 상황에서 바브엘만데브해협마저 후티 손에 넘어가면 세계 원유 수송량의 30% 이상이 묶이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수 있다. 이른바 ‘더블 초크포인트(병목지점)’의 공포다.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고, 머스크 등 글로벌 해운사가 수에즈 항로 포기를 선언한 것은 단순한 물류비 상승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후티는 1990년대 북부 예멘의 소수 종파(자이디파) 권익을 지키기 위한 운동에서 출발해 무장반군으로 발전했다. 척박한 산악지대에서 수십 년간 내전을 견딘 이들은 첨단 미사일 기술까지 확보하며 일개 무장단체를 넘어 강대국에 대한 협상력을 갖춘 전략적 플레이어로 부상했다.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 이슬람의 승리를”이라는 후티의 슬로건이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실체적 위협이 된 것이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에게 중동의 연쇄 봉쇄는 재앙에 가깝다. 에너지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에 전쟁 장기화는 심각한 에너지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고물가와 고환율 압박 속에 다시 마주한 지정학적 리스크가 ‘눈물의 문’이 되지 않도록 위기 대응의 고삐를 단단히 쥐어야 할 시점이다.

안정락 논설위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