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시장 개입은 어디까지 허용되고, 어느 시점부터 시장을 왜곡하는가. 자사주 소각을 강제한 3차 상법 개정안은 경제학의 오랜 숙제를 떠올리게 한다. 정부가 기존 자사주 매각까지 법으로 강제한 것은 자사주가 대주주를 위해 악용된다는 비판 때문이다. 이런 시도를 차단해야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될 수 있다는 논리다. 핵심 인재 붙잡아야 하는데…올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개정 상법이 적용되자 예상 밖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상당수 기업이 자사주를 태우는 대신 임직원 성과 보상에 썼다. 법은 소각을 원칙으로 제시했지만, 기업들은 예외를 택했다. 상대적으로 재무 여력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일수록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자사주를 지속적으로 매입·소각할 수 없다면 핵심 인재를 붙잡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막상 성과 보상을 실행하려고 하니 곳곳에 장애물이 있다고 기업들은 하소연했다. 대표적 성과 보상인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은 주총에서 계획만 확정해도 회계상 비용으로 선반영된다. 지급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비용이 먼저 반영돼 기업의 수익성이 훼손되는 구조다. 스톡옵션은 행사 시점에 과세가 이뤄지는 현행 제도가 비합리적이라는 지적이 꾸준하다. 주식을 팔아 현금을 손에 쥐는 시점에 과세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랐지만, 세법은 바뀌지 않는다.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은 다르다. 핵심 인재 유치를 위한 주식 기반 보상 제도에 다양한 혜택을 준다. 과세 시점과 방식은 기업과 임직원의 부담을 낮추는 방향으로 설계했다. 회사 주식을 장기 보유할 때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주식 배분하려면 곳곳 장애물반면 한국은 임직원 성과 보상 제도가 위축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올해 삼성전자는 초과이익성과급(OPI)을 주식 대신 현금으로도 지급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질했다. 성과급으로 회사 주식을 지급했더니 세금을 내기 위해 거액의 대출을 받아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했다.
기업의 혁신, 시장의 성장을 법과 제도로 강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에 가깝다. 자사주 매입·소각, 임직원 파격 보상, 안정된 지배구조 등 기업이 장기 성과를 내는 전략은 다양하다. 획일적인 규제는 시장의 왜곡을 초래하고, 기득권을 강화할 수 있다. 다양성과 차별화가 존중되는 문화에서 혁신 기업이 자라난다.
혁신 기업 ‘아이콘’ 테슬라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해 11월 테슬라 이사회는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에게 1조달러(약 1500조원) 규모 성과연동 스톡옵션을 부여했다. 현재 12~13% 수준인 머스크의 테슬라 지분율을 최대 30%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파격적인 보상이다. 소액주주보다 대주주에게 유리하다는 비판 여론에도 이사회가 상정한 안건은 그대로 주총을 통과했다. 주주들이 이해 상충 논란보다 미래 가치에 더 높은 점수를 준 결과다. 동일한 결정이 한국에서 이뤄졌다면 배임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기업 경영엔 정답이 없다. 획일적인 규제가 모든 기업에 단일 해법을 강제하는 순간 기업과 시장의 선택지는 줄어든다. 창의성과 역동성도 함께 위축된다. 코스피 6000시대에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또 다른 규제가 아니라 불필요한 규제를 덜어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