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패션의 중심지인 도쿄 시부야에서 백화점이 사라진다. 마지막으로 남은 세이부백화점(사진)이 58년 만에 문을 닫는다. 불황과 소비 침체 장기화로 달라진 소비 트렌드에 적응하지 못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늘어나는 명품 소비층을 공략해 초호황을 누리는 한국 백화점과 대비된다.
29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세이부 시부야점은 오는 9월 폐점한다. 이 백화점은 1968년 시부야역 앞에 문을 연 뒤 58년간 ‘패션 거리’ 시부야의 중심 역할을 했다. 2020년에는 도쿄백화점 도요코점이, 2023년에는 도쿄백화점 시부야 본점이 폐점했다. ‘일본의 명동’ 시부야에 백화점이 단 한 곳도 남지 않게 된 것이다.
일본의 백화점 폐점은 2010년 전후부터 지방 도시를 중심으로 이어지다가 2020년대 들어 대도시로 번졌다. 지난 2월에는 나고야역 앞의 랜드마크이던 메이테쓰백화점 본점이 시민들의 눈물과 함께 폐점했다. 2022년에는 오다큐백화점 신주쿠점 본관이 문을 닫았다.
취약해진 일본 중산층의 소비 여력이 가장 큰 이유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국민생활 기초조사에 따르면 일본 가구의 중위소득은 1993년 550만엔(약 5170만원)에서 2023년 410만엔(약 3860만원)으로 줄었다. 세이부 시부야점 매출도 2017년 436억엔에서 2022년 317억엔으로 약 30% 감소했다.
일본 도심지에선 지갑이 얇아진 직장인을 겨냥한 중저가 잡화점 돈키호테, 유니클로 등만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는 “백화점은 비슷한 상품을 나열해놓고 해외 관광객이 사주기만을 기다릴 정도로 독자적인 매력이 떨어졌다”며 “소비자가 온라인 쇼핑에 몰린 것도 백화점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반면 한국 백화점은 명품 호황에 힘입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샤넬과 까르띠에 등 명품 브랜드관은 아침 일찍 ‘오픈런’을 하지 않으면 매장을 구경하는 것조차 힘들다. 신세계백화점의 올해 1~2월 명품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6% 증가했다. 같은 기간 롯데백화점도 2024년 5%대에 머물던 명품 매출 증가율이 25%로 뛰었다.
내수 경기 침체라는 상황은 일본과 비슷하지만 ‘한정된 소득을 더욱 가치 있는 데 쓰고 싶다’는 소비자의 욕망에 맞춰 명품 마케팅을 강화한 것이 돌파구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증시 활황으로 개인투자자의 투자 소득이 늘어난 것도 사치품 소비로 이어졌다. 한국 증시보다 일찍 닛케이지수가 상승했음에도 백화점 매출로 연결시키지 못한 일본과 상반되는 점이다.
중·일 갈등 격화로 중국의 ‘큰손’ 관광객이 일본 대신 한국행을 선택하는 것도 반사이익으로 작용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 이후 중국인 관광객이 자취를 감추며 일본 주요 백화점의 올 1월 중국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0% 줄었다. 같은 달 롯데백화점 명동본점의 외국인 매출 증가율은 90%에 달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