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증권시장 상장 시가총액 상위 200개 기업의 2025회계연도 결산배당금 규모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 기업의 설비투자 규모는 전년 대비 소폭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상장사들이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등에 힘입어 주주환원은 강화했지만 관세 등 글로벌 불확실성이 증폭되자 신규 투자는 자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9일 한국경제신문이 유가증권시장 시총 상위 200개 기업(3월 18일 기준)이 제출한 ‘2025년 사업 보고서’를 전수 조사한 결과, 상장사의 현금배당금은 총 48조2734억원으로 전년 동기(41조9066억원) 대비 15.2%(6조3668억원) 증가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사상 최대 규모로 10년 전인 2015년(17조7004억원)과 비교하면 약 172% 급증했다.
배당금을 늘린 기업은 120곳으로 전체 기업의 60%에 해당한다. 주로 금융·증권, 반도체, 조선·중공업 등의 업종에서 배당 확대가 두드러졌다. 업황 호조로 실적 개선폭이 큰 기업들이 배당을 늘려 적극적인 주주환원 전략을 펼친 것으로 풀이된다. 12월 결산법인은 오는 4월 중하순께 주주에게 배당금을 지급한다.
기업들의 지난해 설비투자액은 총 269조2950억원으로 전년(269조5212억원) 대비 0.08% 감소했다. SK하이닉스 등 투자 규모를 늘린 기업(107곳)이 줄인 기업(92곳)보다 많았지만, 2차전지 철강 화학 등 주요 장치산업 기업이 투자를 큰 폭으로 줄이면서 전체 투자액은 정체됐다.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삼성SDI 등 배터리 3사의 설비투자액은 1년 만에 9조3098억원 감소했다. 중국산 저가 철강 공세에 직면한 포스코홀딩스도 투자 규모를 전년보다 2조원 가까이 줄였다. 삼성전자는 연구개발(R&D) 등의 무형자산 투자는 늘렸지만, 반도체 설비 등 유형자산 투자는 축소해 전체 설비투자액이 1조5885억원 감소했다. 삼성전자, SK㈜, LG화학 등 48개 기업은 설비투자를 줄이고 배당은 늘리는 행보를 보였다.
코스피 200기업, 10곳 중 6곳 현금배당 확대
반도체·금융·조선 '통큰 배당'…에이피알·크래프톤도 첫 배당지난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은 사상 최대 실적을 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투톱’뿐 아니라 조선·방위산업·원자력발전·금융 업종 등에서 고르게 이익이 증가한 덕분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밸류업 프로그램과 상법 개정을 추진하자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은 현금배당을 늘리면서 주주환원 기조를 강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로 볼 수 있는 신규 설비투자(유형·무형자산 취득)는 뒷걸음쳤다. 대통령 선거, 미국의 관세 인상,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등으로 불확실성이 증폭되자 기업들이 평소보다 보수적인 경영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반도체·조선 중심 배당 확 늘려29일 한국경제신문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상위 200개 기업의 ‘2025년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2025년 결산 현금배당금을 전년 대비 가장 많이 늘린 기업은 삼성전자(1조2971억원), 한국전력(8531억원), SK하이닉스(5750억원), HD한국조선해양(5091억원), HD현대중공업(3814억원) 등으로 나타났다. 전년도 배당이 없다가 지난해 현금배당에 나선 기업도 있었다. 뷰티업체 에이피알, 게임업체 크래프톤, 2차전지업체 포스코퓨처엠, 2차전지용 하이니켈 전구체 생산업체 에코프로머티리얼즈 등이 대표적이다.
2025년 결산 배당금 확대가 두드러진 업종으로는 금융 및 증권, 반도체, 조선업종이 꼽힌다. 현금배당금 증가 상위 20개 기업 가운데 8곳(KB금융, 신한지주, 우리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한국금융지주, NH투자증권, 키움증권, 삼성생명)이 금융·증권 업종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종과 네이버(2251억원), 크래프톤(995억원) 등 정보기술(IT)서비스·게임 업종도 배당금을 크게 늘렸다. HD한국조선해양, HD현대중공업 등 조선 업종에서도 업황 회복에 따른 실적 개선이 배당 확대로 이어졌다. ◇설비투자는 ‘업종별 양극화’이들 기업의 설비투자는 업종별 양극화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호황을 맞은 반도체와 방산업계는 ‘공격 투자’를 이어간 반면 전기차 캐즘에 빠진 2차전지와 업황이 부진한 철강·석유화학 회사들은 일제히 투자를 줄였다. 삼성전자, SK㈜, HMM 등은 전년 대비 당기 설비투자 규모를 축소했지만 배당은 확대한 기업 목록에 올랐다. 기업들이 성장 정체기나 불확실한 경기 여건을 맞은 상황에서 대규모 시설 투자 대신 주주 가치 제고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 그룹 내에서도 설비투자 기조가 엇갈렸다. 이들 200개 기업 가운데 설비투자(유형·무형자산 취득액 기준)를 가장 많이 늘린 곳은 SK하이닉스다. 지난해 설비투자액은 28조5793억원으로, 1년 새 11조9167억원이나 늘었다. SK하이닉스는 올해부터 3년간 설비투자에 180조원 이상을 추가로 쏟아부을 계획이다.
설비투자액을 가장 많이 줄인 곳은 SK다. 그룹 지주사인 SK㈜는 연결 기준 설비투자액이 2024년 15조9275억원에서 지난해 10조809억원으로 6조원 가까이 줄었다. 2차전지(SK온), 석유화학(SK지오센트릭·SK인천석유화학) 등 업황이 좋지 않은 계열사들이 일제히 투자를 축소한 영향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2024년까지 배터리 투자를 공격적으로 늘렸으나 최근 그룹 사업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면서 긴축경영에 들어갔다”고 했다. 삼성SDI(-3조2285억원), LG에너지솔루션(-1조5217억원) 등 다른 2차전지 회사들도 전방산업인 전기차 수요 둔화 여파로 투자폭을 줄였다.
반도체 훈풍에 힘입어 지난해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한 삼성전자는 작년에 이어 ‘국내 설비투자 1위’(52조1531억원) 타이틀을 지켰다. 하지만 전년에 비하면 투자액이 1조5885억원 줄었다. 에너지와 방산 분야에선 투자액이 조(兆) 단위로 늘었다. 전력 공급 안정화를 위해 초고압직류송전(HVDC), 신재생발전 시설 등 인프라를 확충 중인 한국전력은 지난해 15조9376억원을 설비투자에 투입했다. 전년 대비 1조6297억원 증가했다. ‘K방산’ 수출 호조를 뒷받침하기 위해 생산라인을 확대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1년 새 설비투자액이 7536억원에서 1조9941억원으로 두 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안상미/이선아/오현아/배성수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