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녀’(2010)에는 거대한 샹들리에가 등장한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외국산 조명처럼 보이지만 이는 사실 배영환 작가(57·사진)가 깨진 소주병으로 특별 제작한 것이다. 다양한 종류의 술병을 깨서 조명을 만드는 ‘불면증’ 연작은 배 작가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다. 멀리서 보면 번쩍이지만 가까이 가면 초라하고 위태로운 현대인과 도시의 모습을 작품으로 표현한 것이다.
배 작가는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뒤 붓이 아니라 공사 현장의 폐목, 깨진 병, 버려진 가구를 집어 들었다. 그의 이름을 알린 건 1990년대 후반 발표한 ‘유행가’ 시리즈다. 알약과 면도날로 유행가 가사를 써 내려가 완성한 작업으로, 약으로는 몸을 달래고 노래로는 마음을 달래는 사람들의 모습을 시각화했다. 사람들이 버린 것을 통해 시대의 초상을 끌어내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배 작가는 베네치아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샤르자비엔날레 등을 거치며 한국 현대미술계 주요 작가로 자리 잡았다.
지금 서울 성북동 BB&M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단체전 ‘행잉 어라운드’에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전시는 다음달 11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