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조원 유증에 등돌린 시장…한화솔루션 '차입 경영의 덫'

입력 2026-03-27 17:29
수정 2026-03-28 00:52
▶마켓인사이트 3월 27일 오후 4시 25분


2020년 12월 21일 한화솔루션은 장 마감 직후 1조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개인투자자는 기존 지분 가치가 희석될 것을 우려했지만 이튿날 주가는 1.19% 내리는 데 그쳤다. 기관투자가가 1조원을 태양광 소재 연구개발(R&D) 등 미래 사업에 투자하겠다는 설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결과였다.

이번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한화솔루션이 지난 26일 장중인 오후 2시30분께 2조4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공시를 올리자 주가는 전일 대비 18.2% 급락한 3만6800원에 마감했다. 증자로 마련한 자금 중 상당액을 빚을 갚는 데 쓴다는 소식이 투자 심리를 꺾었다. ◇ 부메랑이 된 계열사 빚
한화솔루션은 이번 유상증자를 통해 조달할 2조4000억원 가운데 1조5000억원(62.5%)을 부채 상환에 쓸 계획이다. 급한 불은 부채비율 관리다. 이 회사는 2023년 미국 조지아주 태양광 통합 생산 단지인 ‘솔라 허브’ 구축을 결정한 이후 현지 법인인 한화큐셀아메리카홀딩스와 한화큐셀USA 투자금 조달 과정에서 지급보증을 섰다. 당시 한화솔루션이 채권자들과 맺은 기한이익상실(EOD) 발동 요건은 연결기준 부채비율 200% 이하 유지였다. 기한이익상실은 대출금 만기가 오기 전이라도 채권자가 빌려준 돈을 즉시 갚으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한화솔루션의 부채비율은 2023년 말 167.01%로 비교적 여유가 있었으나 공격적인 투자와 업황 악화가 맞물려 지난해 말 196.32%로 치솟았다. 두 미국법인이 빌린 돈의 만기는 2027년 11월 이후지만 부채비율이 200%를 넘으면 즉시 상환해야 하는 사유가 발생한다. 지난해 말 기준 두 미국법인이 빌린 금액은 약 6900억원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통상 사채 하나에서 기한이익상실이 발생하면 다른 사채도 연쇄적으로 기한이익상실 사유가 생긴다. 지난해 말 기준 한화솔루션이 보유한 회사채 잔액은 3조원에 달한다. 자회사 보증을 섰다가 모회사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이번 증자가 순조롭게 이뤄지면 한화솔루션은 연쇄 기한이익상실 위기에서 확실히 벗어날 전망이다. 한화솔루션은 이번 유상증자로 올해 부채비율을 140%대 초반으로 낮추고 2030년에는 101.3%까지 내린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회사 측은 “이번 유상증자가 아니더라도 부채비율 200% 선을 방어할 여력이 있다”고 말했다. ◇등 돌린 증권사들한화솔루션의 유상증자에 대한 증권사의 반응은 냉랭하다. DS투자증권은 이날 ‘기대효과 없는 유상증자’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고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매도’로 하향했다. 매도 의견을 잘 내지 않는 국내 증권업계 관행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삼성증권, DB증권, 미래에셋증권도 일제히 ‘매수’에서 ‘중립’으로 투자의견을 바꿨다. 미래에셋증권은 한화솔루션의 목표주가를 기존 4만6000원에서 3만8000원으로 내려 잡았다.

6년 전에 비해 유상증자 규모가 두 배로 커진 영향도 있지만, 업계에선 무엇보다 미래 기대효과가 없다는 점을 문제로 보고 있다. 증자 목적이 신사업 등 미래 투자가 아니라 차입금 상환에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은 중국발 저가 공세로 태양광 패널 업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조지아주에 짓고 있는 솔라 허브에 돈을 계속 쏟아부어야 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한화솔루션은 나머지 9000억원을 차세대 고효율 태양광 전지인 ‘탠덤 셀’과 하부 구조인 ‘톱콘’ 양산 등에 투자하겠다고 했지만 이에 대한 의문도 적지 않다. 이용욱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탠덤 셀 양산 시점까지 기술 격차를 유지할 수 있을지, 태양광·화학 업황이 언제 회복할지가 핵심 변수”라고 지적했다.

이번 유상증자가 끝이 아닐 수 있다는 것도 우려를 키운다. 한화솔루션은 그간 차입금을 줄이기 위해 전남 여수산업단지 내 유휴부지, 울산 사택 부지 등 1조6000억원 규모 자산을 매각했다. 추가로 팔 수 있는 자산이 한정된 만큼 선택지가 많지 않다.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는 이날 금융감독원에 한화솔루션의 유상증자를 중점 심사해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내겠다고 밝혔다. 전날 오후 기준 탄원서에 동참 의사를 밝힌 소액주주는 1800여 명(지분율 0.4%)이다.

최석철/이선아 기자 dols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