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멕시코 간 관세 전쟁이 불붙을 조짐이다. 멕시코 경제의 핵심 축인 자동차 산업이 중국의 전기차 공세에 밀려 붕괴 위기에 내몰리면서다.
견디지 못한 멕시코가 올 들어 고율 관세 부과라는 초강수를 두면서 중국까지 맞보복에 나서려는 모습이다. 단순한 관세 분쟁이 아닌 양국 핵심 산업의 구조적인 충돌 성격이 짙어 단기간에 갈등이 해소되긴 어려울 전망이다.
최대 50% 관세…"보복 가능" 옐로카드 27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상무부는 전일 멕시코의 새로운 관세 조치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냈다. 멕시코가 올 1월부터 1463개 품목의 아시아산 제품에 5∼50% 관세를 부과한 조치가 중국 상품과 서비스·투자의 멕시코 시장 진입을 제한한다는 게 핵심이다.
이번 관세 조치로 중국산 자동차는 50%라는 고율 관세를 적용받게 됐다. 상무부는 이같은 조치가 무역 장벽을 형성한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번 조치가 300억달러(약 45조2580억원) 이상의 중국 수출에 영향을 미치는 데다 기계·전기 업종에선 약 94억달러 규모 손실을 초래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중국 산업의 이익을 확고히 수호하기 위해 관련 조치를 할 권한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관세 맞보복 가능성을 시사한 셈이다.
중국의 항의에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멕시코 경제부 장관은 현지 한 행사에서 자국 산업을 불공정 경쟁으로부터 보호할 권리가 있다고 맞섰다. 그는 "정부 지원을 통해 시장 확대를 시도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판단해 관세를 도입했다"며 "중국산 금속 제품이 멕시코에서 t당 150달러에 판매되고 있는데 국가 보조금 없이는 불가능한 가격"이라고 주장했다.
섬유와 신발, 철강 업종도 멕시코 생산자들이 심각하게 불리한 경쟁 조건에 놓여 있다는 논리다.
멕시코 상원은 지난해 12월 일반 수입·수출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멕시코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지 않은 국가의 제품이 규제 대상이 됐다. 대상국에는 중국 이외에 한국과 인도, 베트남, 태국 등이 포함됐다.
"세계 자동차 산업 지형 흔들 수도" 멕시코 정부는 이번 관세 조치가 중국만을 겨냥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지만 전문가들은 중국 전기차들의 수출 공세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멕시코 경제의 핵심 산업을 둘러싼 구조적인 충돌이라는 해석이다.
자동차 산업은 멕시코 경제의 핵심 축이다. 멕시코 국내총생산(GDP)의 약 4~5%를 차지하고 있다. 제조업 생산만 보면 약 18~20%를 담당하면서 멕시코 전체 수출의 약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멕시코는 세계 자동차 생산 7위 국가다. 연간 약 400만대 가까운 차량을 생산하고 대부분을 수출한다. 특히 미국으로 수출되는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에서 멕시코는 중요한 생산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고용 창출 효과도 크다. 자동차 산업의 직접 고용만 100만명 이상, 간접 고용까지 포함하면 약 200만 명에 가까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몇년 새 중국 전기차의 급격한 수출 확대로 멕시코의 자동차 산업 근간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중국 자동차의 멕시코 시장 점유율은 2020년만해도 0%대였지만 지난해엔 10%대로 올라섰다. 중국의 멕시코 자동차 수출은 연간 약 45만~50만대다. 중국의 대표적인 전기차 기업인 비야디(BYD), 지리차, 체리차 등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멕시코 자동차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멕시코의 자동차 수입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육박했다. 일본, 미국보다 큰 비중이다. 중국 자동차는 가격이 현지 생산 차량보다 저렴한 경우가 많아 멕시코 내 자동차 제조사와 부품 산업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멕시코 정부가 우려하는 건 공급망 내 입지다. 멕시코의 자동차 산업은 그저 자동차를 만드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미국 자동차 산업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멕시코에서 생산된 자동차와 부품은 대부분 미국으로 수출된다. 멕시코 자동차 산업이 흔들리면 북미 자동차 공급망 전체가 영향을 받는 구조다.
그런데 중국 자동차 기업들이 멕시코 시장에 진출하고 생산 공장까지 세우기 시작하면서 이같은 공급망이 위협받고 있다. 중국 자동차 기업이 멕시코에서 생산하면 미국으로 무관세 수출이 가능해서다. 중국 자동차 기업이 멕시코에 공장을 세우면 사실상 미국 시장에 우회 진출하는 효과가 발생한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도 멕시코가 중국 자동차의 북미 진출 통로가 되는 것을 강하게 경계하고 있다.
실제 이번 멕시코의 관세 부과 시점은 멕시코가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 재검토 협상을 준비하는 시점과도 맞물렸다. USMCA 재검토에서는 회원국들이 협정을 향후 16년 더 연장할지, 아니면 개정을 추진할지를 오는 7월 1일까지 결정해야 한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 제조업체들이 멕시코를 우회 수출 거점으로 활용해 미국 시장에 우대 조건으로 진입하는 것을 막으라고 멕시코 정부를 압박해왔다.
베이징 산업계 관계자는 “멕시코의 이번 관세 조치는 단순한 보호무역 성격이 아니라 미국과 무역 협정 재협상과 공급망 재편 전략과 관련된 결정”이라며 “미국이 멕시코 자동차에 관세를 부과하거나 생산 비율 규정을 강화하면 멕시코 경제 전체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전기차 공세와 미국의 협상 압박 속에서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조치란 해석이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