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서 펼쳐진 나의 청춘과 사랑 "그곳엔 아직 내 가방 하나가 있지"

입력 2026-03-29 17:31
수정 2026-03-29 17:32
비단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라지 않았어도, 인생의 여정에서 짧은 순간 스쳐 지나갔음에도 마음속에 항상 아련하게 머무는 곳이 있다.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곳은 나의 제2의 고향 같은 곳이야.’

사람들은 자신만의 그곳을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나는 그곳에 관하여 무엇을 생각할까?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골목 곳곳의 풍경들이 흑백영화처럼 그려지고, 코에서는 그 장소 특유의 냄새가 기억된다. 귀에서는 그곳 어디에선가 마주친 장면과 피부에 닿는 공기에 반응하여 들리는 소리들, 음악이 들릴 것 같은 그곳들을 그리워한다.

과거의 시간과 현대의 시간이 공존하는 곳, 장벽의 상흔이 묘한 긴장감으로 남아있던 회색빛의 흑백필름 같던 2007년 1월의 베를린이 나에겐 그곳이다. 독일에서 스무 해 가까운 시간을 살아가고 있지만, 나는 유럽 생활의 첫 페이지를 장식했던 그해 겨울의 베를린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

지금은 그곳에 살지 않고 가끔 일정이 생기면 짧은 방문을 거듭할 뿐이지만, 도시의 경계에 들어서는 순간 나에게 아련함을 가져다주는 특유한 도시의 체취가 있다. 그 체취가 시간이 지났어도 나를 세월을 거슬러 다시 그때의 청년 모습으로 데려가 준다.



그 시린 도시를 걸어 다니며 마주하는 풍경을 은빛으로 채색해주던 선율이 있었다. 베를린에 도착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연주회장에서 그 곡을 접해서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 도시의 1월이 내게 주던 색깔과 분위기 때문이었으리라.

빔 벤더스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속 천사 다미엘이 높은 곳에서 세상을, 베를린을 내려다보듯, 2007년의 나 역시 그 흑백의 풍경 속에 서 있었다.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혁명의 어두움, 두려움과 포화 속에서 쓰였음에도 믿기지 않을 만큼 현실 너머의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했던 곡은 전쟁의 상흔과 분단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겨진 폐허의 자리들을 무심히 지나치던 베를린의 공기와 닮아 있었다. 그 비극의 층 위로 겹쳐 흐르던 현대인들의 분주한 일상, 메마른 무채색의 도시 위로 프로코피예프의 은빛 선율은 마치 새벽안개를 뚫고 비치는 한 줄기 예리한 빛 같았다.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라장조 Op.19]
처음 시작해보는, 처음 겪어보는 타국에서의 생활이다. 제대를 하자마자 무심코 떠나왔기에 새로 마주한 곳들은 나에게 신비함과 이상함, 호기심과 두려움 등이 섞여 있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오전에는 새로운 언어도 배우고 오후에는 이곳저곳 등을 정처 없이 다니고 주말에는 동베를린의 눅눅한 술집으로 향하였다.

영국인, 독일인 등 서로 말도 잘 안 통하는, 우연히 만난 낯선 이들과 밴드에서 건반을 치던 시간은 이제껏 해왔던 음악 생활과는 전혀 다른 신비함이 있었다. 해가 지며 스며든 그 어두컴컴한 클럽의 입구는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발견한 토끼굴과 같았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 평소에 접했던 무대와 다른 모습의 무대에 올라가 밤새 시끌벅적하게 밴드의 일원으로 건반을 칠 때면, 나는 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간 앨리스처럼 자유로웠다. 또 다른 밤에 마주한 시간은 어학 선생님이자 친구가 되었던 작가와 함께한 예술가들의 살롱 모임이었다.

낡은 살롱에 모여 술잔 부딪치는 소리와 담배 냄새가 눅진하게 배어 있던 그 밤의 대화들은 마치 20세기 초의 어느 유럽 살롱으로 타임슬립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예술에 대한 열기와 일상에 대한 대화가 오가는 그 공간은 영화 속 천사 다미엘이 마주했을 법한 흑백 속의 모습들, 동경하던 인간적인 온기로 가득했다.

나에게 앨리스가 발견한 토끼굴 같던, 천사 다미엘이 흑백 속의 8개월간 첫 베를린 생활을 마치고 몇 달 후 다시 베를린을 찾았다. 다시 만난 베를린은 이전과는 조금 다른 공기를 머금고 있었다. 앨리스의 토끼굴을 벗어나 비로소 ‘현실’이라는 지상으로 발을 내디뎠다. 천사 다미엘이 날개를 포기하고 인간이 되어 처음으로 손에 쥐었던 쌉싸름하고 뜨거운 커피 한 잔. 그 작은 온기에서 ‘살아있음’을 만끽하며 세상을 컬러로 마주하게 되었던 것처럼, 나에게도 그런 변화가 찾아왔다.

사랑. 연애를 했고, 떨리는 마음으로 프러포즈를 하던 그 순간들. 다미엘이 연인 마리온을 만나 비로소 완전한 인간이 되었듯, 나 역시 사랑을 통해 베를린이라는 도시를 다시 채색하였다. 부부가 되어 시간이 지나 함께 프로코피에프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연주했다.

2007년 홀로 걷던 회색빛 베를린의 안개 속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그 곡의 다음 이야기들을 그때서야 마주할 수 있었다. 몽환적인 토끼굴에서 시작된 선율이 마지막에 이르러 눈부시게 아름다운 세상으로 피어오르는 그 흐름. 그것은 흑백의 고독을 지나 함께 만들어가는 유채색의 세상이었다.

글 속 그 선율, 프로코피에프 바이올린 협주곡 1번 ▶ 만나보기



그로부터 다시 많은 시간이 흘러 우리는 베를린을 찾으며, 그곳에서 함께 연주를 하며 다미엘이 느꼈던 감정들을 느꼈다. 그 도시가 내게 가져다준 것은 단순한 과거의 조각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살게 하는 감각이다. 그래서일까. 흑백 시절의 그 낡은 살롱에서 마주했던 마를레네 디트리히의 노래가 여전히 나에게 머문다.

“내게는 베를린에 아직 가방 하나가 있네 (Ich hab’ noch einen Koffer in Berlin)” 그녀의 노래 속 가방처럼, 내 마음속에도 베를린 어느 모퉁이에 남겨둔 가방 하나가 놓여 있다. 베를린을 기억하며 쌉싸름한 커피 한 잔을 손에 움켜쥐고, 손끝으로 전해지는 이 익숙한 온기를 느끼며.

지휘자 지중배

[마를레네 디트리히 - Ich hab' noch einen Koffer in Berl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