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공연예술단체인 스튜디오반이 세계 권위의 국제 지원 프로그램 ‘입센 스코프 그랜트 2026’에 최종 선정됐다고 27일 밝혔다. 노르웨이 정부가 2007년부터 주관해온 이 사업은 노르웨이의 작가 헨리크 입센의 작품을 기반으로 한 예술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올해 공모에는 65개국 207개 프로젝트가 접수됐으며 이 가운데 5개 작품이 최종 선정됐다. 이중 스튜디오반의 ‘민중의 적: 거짓의 시대’가 한국팀으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것. 선정작 ‘민중의 적: 거짓의 시대’는 입센의 대표작인 <민중의 적>을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사건과 결합해 재해석한 창작물이다.
작품은 재일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간첩 조작 사건을 배경삼아 고문에 의해 자백을 강요당한 인물이 수년후 자신이 만들어야 했던 거짓된 진실과 마주하는 과정을 그렸다. 주인공은 피해자에서 가해자, 탈주자, 내부고발자로 바뀌어가면서 민중의 적으로 낙인 찍힌다.
이 작품은 “다수는 항상 옳은가”라는 질문을 확장해 일상의 안정이 타인의 진실을 희생한 결과일 수 있는지를 묻는다. 상징적이고 실험적인 무대 언어로 개인의 트라우마와 구조적으로 생산되는 거짓의 문제를 탐구하며 고전을 동시대적 비평 텍스트로 확장하는 시도도 담고 있다.
스튜디오반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2026년 하반기 시범 공연을 거쳐 2027년 본공연을 선보일 계획이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주한 노르웨이 대사관이 공식 후원기관으로 참여한다. 2007년 창단한 스튜디오반은 ‘오리엔트: 총과 바이올린’, ‘콘크리트 랩소디’, ‘꽃잎’등 작품을 통해 역사적 진실과 구조적인 폭력 속 인간의 존엄을 그려왔다. 한국과 일본 간 협업을 기반해 동아시아 디아스포라의 역사와 주변화된 목소리를 무대화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이강선 스튜디오반 대표 연출가는 “입센 스코프 그랜트는 세계 공연예술계에서 가장 도전적 담론이 모이는 무대”라고 설명했다. 주한 노르웨이 대사 안네 카리 한센 오빈은 ”입센의 작품은 시대와 국경을 넘어 한국과 노르웨이를 잇고 있다”며 “양국의 문화 교류를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