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투톱'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투자심리에 다시 한번 찬물이 끼얹어졌다. 중동 분쟁 여파로 고전하던 와중 구글이 선보인 메모리 압축 기술 '터보퀀트'가 차익 실현의 빌미로 작용했다. 그동안 주가 상승을 견인한 폭발적인 메모리 수요가 한풀 꺾일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터보퀀트가 아직 상용화 전인 논문 단계의 기술일 뿐만 아니라, 반도체 사용량이 최적화될수록 비용이 낮아져 더 많은 수요가 창출되는 흐름이 나타날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2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날 각각 4.71%, 6.23% 급락한 18만100원, 93만3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들 주가는 이달 들어 16.81%, 12.06% 밀렸다. 이날 외국인과 기관투자가가 이들 주식을 팔아치우면서 주가를 내렸다. 외국인과 기관은 삼성전자를 각각 2조408억원과 3036억원, SK하이닉스를 7907억원과 3483억원 순매도했다.
구글이 선보인 신기술 터보퀀트가 이날 이들의 주가 급락을 야기했다. 구글 리서치가 25일(현지시간)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터보퀀트는 거대언어모델(LLM)의 단기 기억 장치인 'KV 캐시' 메모리 사용량을 정확도 손실 없이 최소 6배 절감하는 첨단 양자화 알고리즘이다. 이를 통해 엔비디아 H100 그래픽처리장치(GPU) 성능을 최대 8배까지 높일 수 있다고 발표했다.
해당 기술로 동일한 AI 성능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메모리 사용량은 크게 줄어들 것이란 예상이 나왔다. 클라우드플레어의 매튜 프린스 최고경영자(CEO)는 터보퀀트에 대해 "구글의 딥시크(DeepSeek)"라고 평가했다.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는 빅테크(대형 기술기업)의 AI 모델보다 적은 비용으로 비슷한 성능을 구현해낸 것과 마찬가지로 구글이 해당 기술로 메모리 병목 문제를 해소했다는 것이다.
이에 뉴욕증시에서 미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 마이크론은 3.4% 하락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직격탄을 맞았다. 그동안 인공지능(AI)발 메모리 공급난에 힘입어 주가가 단기 급등해 차익 실현 부담이 커진 상황과도 맞물렸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터보퀀트 이슈는 연초 메모리 폭등 랠리에 따른 피로도가 완전히 풀리지 않은 상황 속에서 추가적인 차익 실현의 명분으로 작용한 성격이 있어 보인다"고 짚었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해당 기술과 관련해 '제번스의 역설'을 거론하며 시장의 우려가 과도하다고 진단한다. 제번스의 역설은 생산 효율성이 향상되면서 비용이 하락해 결국 수요가 증가한다는 개념으로 1865년 영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제번스가 제시한 바 있다.
이종욱 삼성증권 연구원은 "딥시크 이후로 반도체 사용량을 최적화하려는 AI 모델의 개선 노력은 계속돼 왔다"며 "효율적인 AI 모델은 오히려 전체 비용을 낮춰 더 많은 AI 계산 수요를 불러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적화 모델은 반도체 수요를 낮추는 게 아니라 같은 반도체 자원으로 더 높은 성능의 AI 서비스를 구현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며 "오히려 AI 메모리 수요 감소 요인은 관련 서비스 개선 속도 둔화, AI 모델 기업 간 경쟁 구도 완화 등 AI 기능이 고착화되는 지점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부연했다.
김일혁 KB증권 연구원은 "딥시크 R1이 20분의 1 비용으로 LLM을 학습시켰다는 주장에 시장이 공포에 빠졌으나, 그것도 잠시였고 이후 AI 시장 확장세는 매우 빠르게 진행됐다"며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추론 단가가 하락하면서 (AI 에이전트) '오픈클로' 같은 킬러 앱이 나온 AI 에이전트 시장의 성장세는 가속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정삼 한경닷컴 기자 js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