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긴 신발의 반전" 크록스는 어떻게 '힙템'이 됐나

입력 2026-03-27 06:00
수정 2026-03-27 14:29

뭉툭한 앞코, 송송 뚫린 구멍, 욕실화를 연상시키는 투박한 실루엣. 미국 신발업체 크록스(Crocs)의 대표 제품 ‘클래식 클로그’는 “못생겼다”는 혹평에 시달렸다. 오죽하면 타임지가 “세계 최악 발명품”이라고 언급한 적도 있다.

반전은 ‘편안함’에서 비롯됐다. 의사와 간호사 등 종일 서서 일하는 전문가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며 크록스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 매출은 드라마틱하게 뛰었다. 창업 첫해 2만4000달러에 불과하던 매출은 이듬해 120만달러(약 16억원)로 치솟았다. 지난해 매출은 약 40억4000만달러(약 6조500억원)로 세계 85개국에서 연간 1억 켤레 이상 팔리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못생긴 신발’의 변신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새 디자인 입은 크록스
지난 21일 홍콩 아시아월드 엑스포에서 열린 글로벌 스트리트 패션·문화 축제 ‘콤플렉스콘 홍콩’ 현장. 글로벌 스트리트 패션의 성지로 불리는 이곳에서 관람객의 시선을 붙든 건 크록스였다. 크록스는 이날 전설적인 신발 디자이너 스티븐 스미스가 합류한 이후 처음 내놓은 신작 ‘리플’을 소개했다. 기존 크록스의 둥글고 투박한 형태에서 벗어나 스니커즈를 닮은 실루엣을 적용했다. 신발 앞코는 낮아지고, 측면 라인은 날렵해졌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일체형 구조다. 일반 운동화처럼 갑피와 밑창을 따로 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크록스 특유의 ‘일체형 몰드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외형을 입체적으로 재설계했다. 내부에는 충격 흡수를 강화한 ‘멜로 폼’을 적용했다. 기능을 유지한 채 외형을 바꾸는 리디자인(re-design) 전략이다. 익숙한 크록스지만 다른 스타일의 신발처럼 보이는 이유다. 행사장에서는 짙은 회색의 그래파이트·더스티 올리브 색상 한정판 리플 제품을 선착순으로 150켤레 판매했는데, 일부 인기 사이즈는 하루 만에 완판될 정도로 호응을 얻었다. 크록스 관계자는 “리플은 크록스의 몰드 디자인을 스니커즈 형태로 확장하는 중요한 디자인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비츠’가 만든 무한한 변주
최근 몇 년 새 크록스는 경계 없는 협업을 통해 다양한 변주를 시도하고 있다. 2016년 유명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케인과 보석 지비츠로 장식한 크록스를 선보였고, 2017년엔 명품 업체 발렌시아가와 함께 신발 굽이 10㎝나 되는 850달러짜리 크록스를 만들어 패션쇼 무대에 올렸다. 포스트 멀론, 저스틴 비버, 배드 버니 같은 유명 팝스타들과 협업한 제품들도 큰 화젯거리가 됐다. 일부는 재판매(리셀) 시장에서 정가보다 높은 가격에 팔리기도 했다.


또 다른 성공의 일등 공신은 ‘지비츠™’다. 크록스 신발 윗면에 뚫린 지름 8㎜짜리 구멍에 꽂는 이 액세서리는 크록스를 거대한 놀이터로 만들었다. 패스트푸드업체 KFC는 치킨 그림을 입힌 크록스에 닭다리 모양 지비츠를 끼웠고, 마이크로소프트는 게임 마인크래프트 이미지를 신발에 옮겨 왔다. 최근엔 레고그룹과 협업해 신발에 꽂는 레고 브릭(블록) 형태의 지비츠를 내놓았다. 레고가 주는 놀이의 즐거움을 신발에 적용한 셈이다.

이 같은 디자인 실험은 소비자의 인식을 바꿨다. 이제 MZ세대에 크록스는 집 앞 편의점용 ‘슬리퍼’가 아니다. 이성과 데이트하거나 친구들과 파티를 할 때도 자기만의 개성을 담은 크록스를 신는다. 심지어 결혼식 날 웨딩드레스에 ‘웨딩 크록스’를 매치하는 파격적 선택도 한다.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순간 등장하는 크록스라니. ‘못생겨서 더 힙한’ 신발, 크록스의 진화는 멈추지 않고 있다.

홍콩=안혜원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