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전쟁에 美 리더십 '흔들'…러·중이 웃는다

입력 2026-03-26 17:36
수정 2026-03-26 17:48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한 달 째에 접어들었다. 지난달 28일 기습적인 공격으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등 지도부 다수를 사살한 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 전쟁이 금세 끝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오래 걸려도 4주 정도면 끝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후 백악관 관계자들의 발언은 6주, 8주 등으로 늘어나다가 이제는 더 이상 종전 시기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지상군 파병과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이 동시에 진행되는 가운데 전쟁에 대한 미국의 피로감도 커지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 등 미국이 견제해 온 세력에 오히려 좋은 일만 시켜주고 있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한국을 둘러싼 주요국의 관점에서 이번 전쟁의 득실을 정리했다. ○리더십 흔들린 미국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25일(현지시간) 미국이 이란 전쟁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면서 “핵심 목표에 매우 근접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미국이 이란 지도부 제거와 군사력 약화 외에 얻은 것이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미국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했다는 점을 성과로 꼽고 있지만 농축 우라늄 400㎏의 행방이 묘연한 상황에선 이를 확언하기에도 어려움이 있다. 또 이란이 지난 2월까지의 협상 과정에서 이미 핵 포기로 가닥을 잡고 있었다는 정황은 개전 명분을 약화시킨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몰리고 있다. 지지율은 36%(로이터-입소스 조사)로 떨어졌다. 석유 매장량 세계 1위 베네수엘라의 석유 통제권을 확보한 모델을 이란에 적용하기를 기대했지만 난망한 처지다. 트럼프 행정부가 배격해 온 재생에너지의 중요성을 되레 부각시켰다. 유가를 비롯한 물가 상승, 지상군 파병 가능성 등은 국내 지지층의 불만을 키우고 있다. 이스라엘이 전쟁 시작과 진행 과정에서 결정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점도 국내 정치에선 마이너스 요인이다.

미국이 오랜 세월 걸쳐 쌓아 올린 동맹과의 관계는 흔들리고 있다. 중동 우방국들은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한 채 이란의 반격에 노출됐다. 핵심 인프라가 훼손되고, 금융·교통·에너지·인공지능(AI) 허브가 되려던 중동 국가들의 꿈은 멀어졌다. 주요 동맹국 등에 호르무즈 해협에 대해 SNS로 군함 파견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미국의 리더십에 흠집을 남겼다. 무엇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의 경제에 큰 타격을 줬다. 이란이 중국 위안화로 석유를 거래하면 해협을 통과시켜 주겠다고 하면서 석유거래를 미국 달러로 하면서 세워진 ‘페트로 달러’ 체제의 위상도 도전받게 됐다.

○중국 ‘페트로위안’ 기대중국은 단기적으로 경제적 충격을 받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지위가 약화되는 데 따른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나라다. 중국 정부는 그간 주저앉고 있는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수출지역을 다변화하고 재정지출을 늘려 왔다. 그러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원유·해운·제조 비용이 크게 상승했다. 중국의 내수 회복도 지연될 전망이다.

동시에 세계 질서 속에서의 입지가 강화되는 계기를 맞았다. 이란산 원유 대부분을 수입하는 등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지만, 전쟁이 시작된 후에는 이란 편을 들기 보다는 중립을 지키는 태도를 유지하면서 ‘주요 2개국(G2)’으로서의 위상을 지키는 데 신경을 썼다. 로이터통신은 “미국의 군사 행동과 대조적으로 중국은 질서와 안정을 강조하고 있다”며 “스스로를 더 신뢰할 만한 강대국으로 포장할 기회를 얻었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중동 개입이 길어질수록 아시아 억지력이 약해지는 것도 중국엔 기회다. 베이징 외교가의 한 관계자는 “중국이 군 전력을 강화하려는 시점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이 약화됐다”며 “이란 전쟁을 계기로 대만에 대한 중국의 군사적 압력이 강화될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이게 웬 떡’이란전의 의외의 승자로 꼽히는 국가는 러시아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도와 중국 등에서 러시아산 원유 수요가 급증했고 가격도 치솟았다. 경제 제재 등으로 브렌트유보다 할인된 가격에 거래되던 러시아산 원유는 현재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 중이다.

국제 유가 급등을 염려한 미국은 일부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제재를 30일간 풀어줬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막대한 재정 압박을 받고 있던 러시아의 숨통을 미국이 틔워준 셈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러시아의 석유 수출에 따른 초과 세입은 하루 1억5000만 달러(2200억 원)로 추정된다”며 “러시아 정부가 챙기게 될 추가 세입 총액이 3월 말까지 33억∼49억 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예상했다.

미국과 동맹국의 군사 자산이 중동으로 집중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에 대한 억지력은 약화됐다. 로이터통신은 “(이란 전쟁 후) 우크라이나가 의존하는 미국산 방공무기 공급이 압박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외교적 영향력도 커졌다. 이란에 드론 등 무기를 제공하면서 전쟁 장기화를 유도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日 전쟁가능국가 전환 가능성
원유 수입의 95%가량을 중동에 의존하는 일본은 한국과 함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해 경제적 피해를 가장 크게 본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공급망 차질로 인해 도요타자동차는 3~4월 중동 수출용 차량 약 4만 대를 감산하기로 했다.

원유가격 상승으로 무역적자가 깊어질 것이라는 전망 탓에 엔화 가치는 1년 8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내려갔다. 총 254일분의 비축유를 보유한 일본은 지난 16일 민간 비축 15일분, 이날부터 정부 비축 1개월분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또 유가 급등에 대응해 2025회계연도 예산 예비비에서 약 8000억엔을 쓰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해협 봉쇄가 길어지면 모두 미봉책에 그친다.

미국이 한·중·일 등에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 파견을 요구한 것은 장기적으로 집권 자민당이 추진하는 자위대 헌법 명기 개헌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일본은 ‘전쟁 포기 조항’을 담은 헌법 9조로 인해 자위대를 파견할 수 없다. 하지만 이란전을 계기로 ‘미국이 원하고 있다’는 명분을 얻었다.

워싱턴=이상은/도쿄=김일규/베이징=김은정 특파원/김동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