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스 메켈레와 임윤찬. 클래식 음악계를 뒤흔든 두 신성이 프랑스 파리에서 만났다. 지난 12일 필하모니 드 파리에서 ‘파리 오케스트라’와 함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선보였다. 공연 시작 넉 달 전부터 2400석 규모의 티켓은 매진됐다.
메켈레와 임윤찬은 서로 익숙한 사이다. 지난해 6월 서울, 2024년 파리 및 미국 보스턴에서도 파리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했다. 당시 서울에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4번을, 파리에선 1번을, 보스턴에선 2번을 연주했다. 메켈레는 지난해 아르떼와의 인터뷰에서 임윤찬을 “친구”라고 부르며 그와 음악적 대화를 많이 나눈다고 했다. 이날 둘은 라흐마니노프 곡들로 그간 맞춰온 호흡을 다시 선보였다.
이번 공연 첫 곡은 피아노 작품인 전주곡(작품번호 3번) 중 2번을 작곡가 헨리 우드가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한 작품이었다. 원체 피아노만으로도 장대함이 돋보이는 곡이어서 관현악 편성이 잘 어울렸다. 목관과 금관이 힘을 더하며 곡이 끝나자 순식간에 파리 필하모닉 홀에 에너지가 가득 찼다. 곧 머리를 묶어 올린 임윤찬이 걸어 나왔다. 악단과 지휘자가 등장할 때보다 더 큰 박수가 쏟아졌다.
시작은 담담했다. 피아니스트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1악장을 시작할 때 멀리서 다가오는 종소리처럼 건반의 울림을 점점 키워가며 느릿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임윤찬의 강약 표현은 뚜렷했지만 그렇다고 서정성에 치우친 인상은 아니었다. 그는 악보를 재현하는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게 루바토(템포 조절)를 하면서도 리듬감을 살렸다. 몸을 좌우로 살짝 흔들며 운율감 있게 빚어낸 소리는 담백하면서도 알찼다.
악단과의 호흡도 돋보였다. 피아니스트가 민첩하게 연주하고 악단이 피아노의 음색을 부드럽게 감싸듯 따라오는 인상이 이어졌다. 여러 성부를 대화하듯 풀어나가는 2악장에선 임윤찬만의 포용력이 빛났다. 플루트, 클라리넷, 바이올린 등 여러 악기와 소리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임윤찬은 악기 저마다의 반응력과 음색에 맞춰 섬세하게 타건을 조절했다. 노련함이 돋보이는 구간이었다.
대미인 3악장에선 금관과 타악기가 긴장을 한껏 끌어올린 뒤 이를 피아노와 함께 폭발시킨다.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감성적인 선율 전개가 두드러지는 악장이기도 하다. 임윤찬과 메켈레, 단원들은 컴퓨터로 설계한 것처럼 똑 떨어지는 듯한 소리를 냈다. 긴장을 쌓아갈 때보다 이를 극적으로 해소할 때 호흡이 더 빛났다. 임윤찬의 감각적인 당김음(싱코페이션)은 음표 하나하나가 악보에 담겨 있는 이유를 규명했다.
놀라운 건 속도감을 유지하면서도 음 하나하나를 민첩하고 명료하게 주조하는 임윤찬의 솜씨였다. 발작적으로 건반을 누른다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힘을 건반에 재빠르면서도 올곧게 담았다. 연주 마지막까지 예민한 반응성을 유지한 덕분에 피아노에선 연주자의 몸과 건반이 하나가 된 듯 일체감 있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마치 칼을 단단하게 벼리는 대장장이가 섬세한 유리공예마저 동시에 해내는 모습 같았다.
연주가 끝나자 “브라보”를 외치는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악장인 사라 넴타뉘를 비롯해 파리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신뢰 가득한 눈빛과 생기 있는 박수로 관객들의 환호에 합류했다. 메켈레와 함께 관객에게 인사한 임윤찬은 프랑스 작곡가 벵자맹 고다르의 오페라 ‘조슬랭’에 쓰인 자장가를 앙코르로 연주했다. 레가토(음 사이를 부드럽게 이어서 연주하는 주법)로 자신만의 리듬감을 살리며 만든 운율이 감미로운 파리의 밤을 선사했다.
11일부터 사흘간 이어진 이번 공연에서 마지막 날인 13일엔 메켈레가 쇼스타코비치의 현악사중주 8번으로 첼로를 켜고 임윤찬이 스크랴빈 소나타 3·4번을 연주했다.
파리=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