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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만기가 짧아진 국채의 증가가 글로벌 자본시장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돈을 다시 조달해야 하는 '차환 구조'의 속도가 빨라지면서다. 최근 중동 분쟁 격화로 촉발된 유가 급등과 장기금리 상승까지 겹치면서 전 세계 국가와 기업이 한정된 자금 유동성을 두고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성장동력 하락 우려28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글로벌 부채 보고서 2026'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국가와 기업이 시장에서 조달해야 할 시장성 차입 전체 규모는 2024년 대비 17% 증가한 29조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두 배에 달하는 규모다.
더 큰 위험은 해당 자금 수요의 질적 목적에 있다. 시장에 쏟아지는 채권 물량 상당액이 미래의 국가와 기업 성장을 위한 새로운 생산적 인프라 투자를 위한 순차입이 아니다. OECD 데이터에 따르면 작년 기준 OECD 회원국 중앙정부의 차환 필요액은 13조 5000억 달러였다. 전체 총차입(17조 달러)의 80%를 차지했다.
당장 국채 입찰 시장에 나오는 국채 10장 중 8장은 과거에 빌린 돈의 원금을 갚기 위해 더 높은 금리로 빚을 내는 '돌려막기' 용도라는 뜻이다. 이런 영향 등으로 OECD 전체 국가의 이자 지출은 작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3.3% 수준으로 급증했다. 최근 10년 내 최고점인 3.4% 부근을 위협하고 있다.
이런 차환 압력의 배경에는 '만기의 구조적 단축' 전략이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고착화와 각국 중앙은행의 매파적 통화정책 유지로 장기채 보유에 대해 시장이 요구하는 보상인 기간 프리미엄이 상승했다.
OECD 평균 10년물 기간 프리미엄은 2025년 말 기준 0.84%로 10여 년 만의 최고치로 올랐다. 고금리 장기화를 피하려는 각국 재무 당국과 기업은 당장의 조달 비용을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해 만기가 짧은 단기 채권 발행을 늘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만기 1년 이하의 단기 재무부 증권 발행 규모는 OECD 전체 총차입의 약 48%를 차지했다. 2026/2027 회계연도에 총 2521억 파운드의 국채를 발행할 계획인 영국은 15년 초과 장기물 비중은 9.1%에 불과하다. 5년 전 30%를 상회했던 것과 비교하면 극단적인 만기 단축이다.
이런 상황에선 산업 간 유동성(자금 확보) 경합이 심해지기 쉽다. 가장 큰 변수는 글로벌 인공지능(AI) 산업의 패권을 노리는 하이퍼스케일러(초거대 클라우드 업체)들의 자본 흡수다. 보통 IT 소프트웨어 산업은 막대한 잉여현금흐름을 창출하기 때문에 채권 발행을 통한 외부 자금 조달 필요성이 낮다.
그러나 생성형 AI 모델 훈련과 초거대 데이터센터 구축, 막대한 전력 인프라 확보 경쟁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OECD에 따르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9개 주요 AI 기업들은 작년에만 1220억 달러의 회사채를 시장에서 흡수하며 글로벌 IT 섹터 발행량의 절반을 홀로 독식했다.
OECD는 이들 빅테크 기업이 2026년부터 2030년까지 4조 1000억 달러에 달하는 누적 자본지출(CAPEX)을 단행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 중 채권시장을 통해 조달할 금액만 약 1조 2000억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향후 5년간 글로벌 비금융 회사채 연평균 발행량의 약 15%를 단일 테마의 소수 기업이 싹쓸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유동성 쏠림 현상은 심각한 구축 효과를 촉발하며 전통 제조업과 한계 기업들을 질식시킬 수 있다. 최고 수준의 우량한 신용등급과 전 세계 투자자가 선호하는 빅테크 기업이 시장의 유동성을 빨아들이면, 차환을 시도해야 하는 일반 기업은 유동성을 확보하지 못하게 된다. 엇갈리는 평가단기물 위주의 만기 단축 기조 등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정책 당국이나 기업의 재무 책임자 입장에서 장기 채권 대신 단기채의 발행 비중을 늘리는 것은 통화정책의 불확실한 현재 환경에서 이자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전략이라는 주장이 있다.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과 폭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4~5%대에 달하는 높은 장기 고정금리를 10년 이상 확정 지어 고비용 구조를 장기간 묶어두는 것은 납세자와 주주에게 막대한 재무적 손실을 강요할 수 있다. 조달 비용이 상대적으로 낮은 단기물로 자금을 융통하면서 향후 장기 금리가 하락할 때 차환하는 것이 재정 건전성 측면에서 유리한 선택이다.
하지만 당장의 이자 비용을 아끼기 위해 만기를 깎아 단기 차입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전략은 리스크를 본질적으로 피하거나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차환 빈도를 높여 위험을 연기하는 폭탄 돌리기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차환 주기가 극단적으로 짧아진 상태에서 예기치 못한 거시적 충격이 발생해 금리가 발작을 일으키면 국가와 기업은 손쓸 틈도 없이 고스란히 고금리 롤오버의 덫에 물릴 수 있다.
채권 롤오버 취약성이 커진 상황에서 중동 분쟁이 터졌다. 이란은 글로벌 원유 공급망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며 국제 유가를 배럴당 119달러 선으로 밀어 올렸다.
지정학적 에너지 쇼크는 중앙은행들이 고금리의 고통을 감내하며 수년간 끈질기게 억눌러온 인플레이션 재점화, 스태그플레이션 발생을 우려하게 했다. 올 상반기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물가 안정에 베팅하며 기준금리 인하 사이클 돌입을 예상한 글로벌 채권시장의 전망이 깨졌다.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단기적으로 극심한 에너지 가격 상승은 전반적인 인플레이션을 끌어올릴 것이 분명하다"며 "이것이 경제와 통화정책에 미칠 파급 효과의 범위와 지속 기간을 현재로선 판단하기 너무 이른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번 전쟁에 글로벌 국채 시장은 바로 반응했다. 영국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연 5%를 돌파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독일의 10년물 국채 금리도 2011년 이후 최고치인 3.025%를 돌파하며 유럽 금융시장 전체의 조달 비용을 올렸다.
선진국 국채 금리 상승은 달러화 부채 의존도가 높은 아프리카 등 신흥국 및 개발도상국 경제에 치명적이다. 국제 신용평가사 S&P 글로벌 레이팅스에 따르면 아프리카 27개국이 작년 한 해 동안 외부 자본시장에서 조달해야 하는 상업성 장기 부채 규모는 1550억 달러로 전년 대비 10% 증가할 전망이다.
한국은 국채 관리에서 선진국보다 안정적으로 통제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작년 기준 한국 정부 부채의 평균 잔존만기는 13.7년으로 OECD 회원국 중 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당장의 빚을 막지 못해 단기 유동성 경색에 빠질 위험이 낮다.
하지만 기업을 보면 우려가 나온다. 자본시장연구원 등에 따르면 올해 차환을 시도해야 하는 국내 회사국채 만기 총규모는 전년 대비 15.2%나 증가한 약 118조 8000억원에 육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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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