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차례의 항암치료에도 부작용으로 막다른 길에 섰던 여덟 살 유나 양은 서울대병원이 자체 생산한 카티(CAR-T) 치료를 받고 기적적으로 회복했다. 근육이 점차 굳어가는 희귀질환을 앓는 명하율(15)군도 10g의 미세한 실로 15㎏을 들어 올리는 웨어러블 로봇을 착용하고, 스스로 팔을 들어 올리는 자립의 꿈을 꾸게 됐다. 아이들이 다시 내일을 꿈꿀 수 있게 된 것은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 유족들이 기탁한 3000억원의 소아암·희귀질환 지원금 덕분이었다.
이 선대회장은 생전 "어린이들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세상을 떠나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며 소외된 생명에 각별한 관심을 쏟았다. 유족들은 고인의 뜻을 받들어 2021년 의료 공헌을 위해 총 1조원을 기부했다. 1조원 중 7000억원은 감염병 극복 지원사업에, 3000억원은 소아암·희귀질환 지원 사업에 각각 사용되고 있다. 이를 통해 현재까지 약 2만8000명의 환아가 치료 기회를 받았다. 서울대병원 강형진 교수는 "환자 수가 적어 연구비 지원이 어려운 소아암 분야에서 이 기부금은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라며 감사를 전했다.
감염병 극복 지원 사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질병관리청은 기부금을 바탕으로 '감염병극복 연구역량 강화사업'을 착수했으며, 그 성과를 공유하는 '이건희 감염병극복 연구역량 강화사업 국제심포지엄(LISID)'을 올해로 2회째 개최한다. 26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이번 행사는 감염병에 대한 글로벌 연구 협력을 통해 대한민국을 감염병 위기로부터 지키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날 행사에서 "고인의 뜻깊은 기부가 국가 감염병 대응 역량 강화를 위한 공공적 투자로 충실히 구현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국립감염병연구소와 국립중앙의료원은 팬데믹 대응 임상 연구 등 총 10개의 핵심 과제를 수행 중이다. 특히 기부금 중 5000억 원은 한국 최초의 중앙감염병 전문병원 건립에 투입된다. 150병상 규모에 첨단 설비를 갖춘 세계적 수준의 병원으로 지어질 예정이다. 실시설계 마지막 단계를 거쳐 내년 상반기 착공해 2030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