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추정제, 선의의 법이 '악마의 증명'이 되지 않으려면 [율촌의 노동법 라운지]

입력 2026-03-26 06:47
수정 2026-03-26 06:51
한경 로앤비즈의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


기술의 발전은 일하는 방식의 경계를 허물었지만, 법의 잣대는 여전히 과거의 기준에 머물러 있다. 알고리즘이 배차를 결정하는 플랫폼 경제에서, 누가 근로자인지를 가려내는 일은 이제 고차방정식이 됐다.

현재 이와 관련하여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안으로 논의되고 있는 해법은 노무를 제공하는 자를 일단 ‘근로자로 추정’하자는 것이다. 2026년 노동절에 맞춰 추진되는 소위 '일하는 사람의 권리 보호를 위한 법률 패키지'의 핵심 내용 중 하나다.

제도의 취지는 명확하다. 입증 책임의 전환을 통해 노무제공자를 보다 두텁게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논의의 중심에서 간과되는 중요한 질문이 있다. ‘노무수령자가 과연 위 추정을 번복할 방법이 있는가?’하는 점이다. 근로자 추정제의 내용과 적용범위현행 법체계에서 노무제공자가 법적 보호를 받으려면 자신이 근로자임을 직접 증명해야 한다. 근로기준법상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이 그 요건사실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은 소송법의 일반 원칙(법률요건분류설)에서 도출되는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만약 위탁계약이나 프리랜서 계약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면 노무제공자는 그 형식과 달리 실질적으로는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음을 증명해야 근로자로 인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근로자 추정제는 이 구도를 뒤집는다. 지난해 12월 발의된 김주영 의원안(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새로운 조항 하나를 신설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다.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하여 자신이 직접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은 이 법과 관련한 분쟁해결에서 근로자로 추정한다"는 내용이다(안 제104조의2 제1항). 이에 따르면 노무제공자는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해 직접 노무를 제공했다'는 전제사실만 확인하면 근로자로 추정된다.

이 효과는 근로기준법을 넘어 퇴직급여법, 최저임금법 등 개별 노동관계법 전반에 미치도록 설계되었으며, 적용 범위는 민사상 분쟁으로 한정하고 형사책임까지 확장하지는 않았다.

추정을 뒤집는 증명이 가능한가?무한한 입증범위
입증의 범위가 한정적이지 않다. 적극적 사실, 즉 “무엇을 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려면 어느 시점에 어떤 행위가 있었는지 특정하고 그에 맞는 자료를 제출하면 된다. 이메일 한 통, 카톡메시지, 녹취파일 하나로도 입증이 가능하다. 반면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어느 특정한 시점이 아니라 일정 기간 전체, 경우에 따라서는 법률관계 전반에 걸쳐 ‘없었음’을 증명해야 한다. 이는 사실상 무한한 범위에 대한 부재의 증명을 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악마가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려면 온 우주를 다 뒤져야 하므로 불가능하다는 ‘악마의 증명(Devil's Proof)’이라는 표현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증거의 부존재
‘없다’는 증거는 존재하기 어렵다. 지휘·감독을 ‘했다’는 사실은 이메일, 메신저, 업무지침 등 다양한 형태로 기록에 남는다. 반면 지휘·감독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별도의 기록으로 남기 어렵다. 법원이나 노동위원회는 노무수령자인 사측에 "지시를 안 했다는 증거가 있느냐"고 묻겠지만, 사측은 '지휘나 감독행위를 안 한 상태'를 입증할 자료가 마땅치 않은 것이다. 따라서 사측은 존재하지 않는 증거를 만들어내야 하는 모순에 직면한다. 만약 전수조사를 통해 지시를 한 메신저 대화나 이메일이 '없다’는 점을 증명했다고 해도 ‘다른 수단’으로 지시했을 가능성도 없다는 점까지 증명되지는 않는 것이다.

본증(本證)의 요구
법률상 추정을 번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추정사실에 의심을 품게 하는 반증으로는 부족하다. 대법원은 법률상 추정의 번복에 관해, 법원에 확신을 줄 수 있는 본증을 제출해야 한다고 판시한다. 즉 노무수령자는 "근로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수준이 아니라, "근로자가 아니다"라는 점에 대해 법원의 확신을 이끌어내야 한다. 소극적 사실의 입증 자체가 용이하지 않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대단히 어려운 과제다.

근로자 추정제 입법안의 문제의식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추정 조항만 있고 구체적인 추정 번복의 기준이 없는 법은 미완성 설계도와 같다. 어떤 사실을 어느 수준으로 증명해야 법률적 추정이 깨지는지에 관한 명쾌하고 합리적인 기준이 입법 단계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이 제도는 노동자의 권리 보호라는 본래 목적보다, 예측 불가능한 법적 리스크로 인한 분쟁을 양산하는 장치가 될 위험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