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대출을 늘리는 기업은 반도체와 방위산업 업종에만 국한돼 있지 않다. HD현대그룹과 LS그룹도 조선업 슈퍼사이클과 인공지능(AI) 붐에 힘입어 투자 실탄을 확보하기 위해 은행 대출 창구를 찾고 있다. 반면 현대자동차그룹과 LG그룹은 대내외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대출을 줄이고 유동성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민·신한·하나은행이 HD현대중공업에 내준 신용공여액은 4조2617억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4조527억원)보다 2090억원(5.2%) 늘었다. 고부가가치 선박을 중심으로 신규 수주가 증가하면서 선수금 환급보증(RG) 발급이 확대된 영향이다.
LS그룹이 지난해 신한·하나은행에서 받은 신용공여액도 4조6978억원으로 전년 말(4조4751억원)보다 2227억원(5%) 증가했다. AI 확산과 데이터센터 증설로 전력 수요가 급증해 투자에 필요한 자금 조달을 늘린 것으로 풀이된다. LS그룹은 변압기와 전선 외에 2차전지 소재, 희토류 영구자석 등을 신사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이를 위해 향후 5년간 국내에서 7조원, 해외에서 5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부영그룹의 하나은행 신용공여는 2024년 1조6352억원에서 지난해 1조8215억원으로 1863억원(11.4%) 증가했다. 투자 목적이라기보다는 건설업황 악화로 계열사 운영에 필요한 운전자금을 미리 차입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미국 관세 리스크에 대비하는 현대차그룹과 LG그룹은 은행 신용공여 규모를 줄였다. 현대차그룹이 지난해 국민·신한·하나은행에서 받은 신용공여액은 12조3325억원으로 전년(13조2606억원)보다 9281억원(7%) 감소했다. 기존 차입금을 꾸준히 상환하며 국내 은행권 대출 의존도를 낮췄다.
같은 기간 LG그룹의 신용공여도 8조8834억원에서 7조5210억원으로 1조3624억원(15.3%) 줄었다. 지난해 성공적으로 완료한 LG전자의 인도 기업공개(IPO) 등으로 대규모 자금을 확보한 만큼 그룹 차원의 차입 수요는 당분간 크게 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세계 경기에 따라 국내 기업의 자금 수요 사이클이 대부분 비슷했지만 최근엔 업종별로 상황이 차이 나 기업별 대출 수요가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수현/양길성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