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영포티 아니 영피프티의 최애 아이돌 [EDITOR's LETTER]

입력 2026-03-28 05:57
수정 2026-03-28 17:10

‘골든’의 아카데미 주제곡상 수상과 완전체로 돌아온 BTS의 광화문광장 공연. 그 어느 때보다 ‘K팝 아이돌’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혹시 ‘최애’라는 말을 알고 계시는지요. ‘最愛(최애)’라는 한자 뜻 그대로 ‘가장 좋아하는 대상’을 뜻합니다만, 지금은 주로 팬덤 내에서 가장 아끼는 연예인 혹은 캐릭터를 가리키는 말로 쓰입니다. ‘최애돌’ 혹은 ‘최애캐’처럼 말이죠.

이런저런 이유로 아직 한 번도 드러낸 적 없지만 저의 ‘현재 최애돌’을 고백하자면 키스오브라이프(KISS OF LIFE)의 나띠입니다. 이유는 그의 드라마 같은 성장 스토리 때문일 겁니다.

나띠는 태국인입니다. 2013년 만 11살의 나이로 3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JYP 태국 오디션에 합격해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2015년 오디션 프로그램 ‘식스틴’에 14살 최연소 연습생으로 출전한 나띠는 당시 박진영으로부터 “나를 돌아보게 하는 무대”라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최종화에서 탈락했고, 그 프로그램으로 결성된 트와이스는 나띠 없이 세계적 걸그룹이 됐습니다.

2017년 JYP를 나온 나띠는 무소속으로 또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 ‘아이돌학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입학 첫날 수석, 기초실력평가 보컬 1위. 강사에게 “퍼펙트”라는 찬사를 들었지만 최종 순위는 13위였습니다. 데뷔의 문턱을 또 넘지 못한 거죠. 이후 스톤뮤직 연습생으로 2년을 더 버텼고, 2020년에야 솔로 싱글 ‘나인틴’을 발표하며 처음 ‘가수’라는 이름을 달았습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했습니다.

그렇게 잊히는 듯했으나 2023년 7월 나띠는 키스오브라이프의 멤버로 재데뷔하며 마침내 ‘빵’ 터졌습니다. 여러 음악 방송 1위와 각종 권위 있는 어워드에서 신인상을 휩쓸었습니다. 한국에 온 지 꼭 10년째 되던 해에 비로소 꽃을 피운 거죠. 특히 솔로곡 ‘슈가코트(Sugarcoat)’에서 보여준 독특한 음색과 자전적 가사는 본인이 직접 짠 안무와 어우러져 엄정화와 이효리의 전성기를 떠올리게 한다는 극찬까지 이끌어냈습니다.

현재 K팝 그룹 중 외국인 멤버가 포함된 팀은 전체의 70%에 달한다고 합니다. 태국은 물론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러시아, 독일, 미국까지 국적도 다양합니다. 이들이 한국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합니다. 혈통이나 배경이 아닌 오직 ‘재능과 숙련도’가 계급을 결정하는 공정한 시스템, 그리고 한국에서 데뷔하는 순간 전 세계적인 ‘K팝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외국 인재들의 유입은 K팝 자체를 업그레이드했습니다. 나띠처럼 태국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보컬이나 춤선처럼 한국인이 미처 보지 못한 각도에서 음악을 풀어내는 외국인 인재들은 장르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경쟁의 압력은 한국인 인재들도 더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혼자였다면 도달하지 못했을 곳까지 함께 올라간 셈입니다. 세계 인재가 한국 시스템 안에서 빚어낸 K팝은 그렇게 더 강하고 넓게 퍼졌습니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이런 시스템이 왜 K팝에서만 일어나야 할까요. 반도체, 자동차, 금융 등 우리 경제의 다른 기둥들도 국적과 배경을 따지지 않고 전 세계 인재를 끌어모아 한국 시스템 안에서 숙성시켜 보면 안 될까요. 물론 지금도 한국의 기업들은 글로벌 인재를 모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때라고 생각합니다. 인구절벽과 내수 침체라는 파고 앞에서 우리 산업이 생존할 길은 결국 K팝처럼 ‘오픈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물건을 수출하는 시대를 지나 이제는 ‘시스템’과 ‘안목’을 수출하고 전 세계의 젊은 천재들이 한국 안에서 10년을 버틸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물론 K팝 시스템의 한계도 있을 겁니다. 조금씩 거론되는 ‘비인격적 트레이닝’이나 ‘부당 계약’ 같은 게 그거죠. 그래서 엔터 산업뿐 아니라 다른 산업에서도 외국인 인재의 ‘소모’가 아니라 ‘성장’을 도모하는 방식의 선순환이 필요할 겁니다. 그저 ‘용병’으로 끝나지 않게 말이죠. 그들이 제2, 제3의 나띠가 되어 화려하게 개화(開花)할 때 비로소 한국 경제의 진짜 영토 확장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 제가 나띠에 대해 ‘현재’ 최애라고 한 것은 의미가 좀 있습니다. 최애는 사람에 따라 자주 바뀌기도 하거든요. 사실 나띠 전에는 뉴진스의 민지였고, 아주 최근에는 아이브 리즈, 잇지 채령이 자꾸 눈에 들어옵니다. 영포티 아니 영피프티의 마음은 오늘도 흔들립니다.

이홍표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이홍표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