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쟤는 남자도 아니야"…'마약왕' 박왕열, 수갑 차고 삿대질

입력 2026-03-25 10:59
수정 2026-03-25 16:32


"쟤는 남자도 아니야."

10년 만에 한국 땅을 밟은 '마약왕' 박왕열(48)은 수갑을 찬 상태에서도 고개를 꼿꼿이 들었다. 안면이 있는 듯한 한 취재진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비아냥거렸다. 마스크를 쓰지 않아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지만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25일 오전 7시 16분께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을 빠져나온 박씨의 회색 카디건을 걷어 올린 팔에는 문신이 선명했다. '사탕수수밭 살인사건 피해자 유족에게 할 말이 없냐', '호화 수감 생활을 했냐'는 질문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박씨는 입국장을 나선 지 3분 만에 호송차에 실려 마약 수사 관할인 경기북부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로 압송됐다. 정상외교로 범죄인 인도...청와대,법무부 '원팀' 필리핀 교도소에 수감된 채 텔레그램으로 국내에 다량의 마약을 유통해 온 박씨가 이날 전격 송환됐다. 필리핀 당국의 과거 인도 거절을 뚫고, 정부 간 치열한 실무협의 끝에 '임시인도' 방식으로 신병을 확보한 결과다. 임시인도는 청구국의 형사절차 진행을 위해 피청구국이 형 집행을 중단하고 신병을 임시로 넘기는 제도다.

박씨는 드라마 ‘카지노’의 모티브가 된 ‘필리핀 사탕수수밭 살인사건’의 주범이자 ‘동남아시아 한국인 3대 마약왕’ 중 한 명으로 꼽힌다. 2016년 10월 필리핀 사탕수수밭에서 한국인 세 명을 살해한 혐의로 현지 대법원에서 최고 60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뉴빌리비드교도소에 수감됐다.

이지연 법무부 국제형사과장(사법연수원 37기)은 이날 인천공항 브리핑에서 "2017년 강도살인죄로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으나 필리핀 법무부가 자국 내 복역을 이유로 거절했다"며 "수감 중 마약을 유통하는 범행을 더는 방치할 수 없어 이번에는 마약 범죄에 한해 임시인도를 청구했다"고 밝혔다.



송환의 결정적 계기는 정상외교였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국빈 방문 당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에게 임시인도를 직접 요청했다. 이후 법무부 검찰국장이 필리핀 현지로 날아가 정성호 법무부 장관의 친서를 전달하고 실무 타결을 이끌어냈다. 법무부는 박씨의 두 차례 탈옥 전력을 고려해 검·경·교정 합동 10명의 특별 호송팀을 투입했다.

정부는 박씨의 마약 유통 조직 실체 규명과 범죄수익 환수에 총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이 과장은 "확보한 휴대전화 등 소지품을 정밀 분석해 가상자산 등으로 빼돌린 범죄수익을 추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시인도 규정상 박씨는 국내 수사와 재판이 끝나면 필리핀으로 돌아가 잔여 형(최고 60년)을 복역해야 한다. 법무부는 국내 수사 경과에 따라 필리핀 당국과 임시인도 기간 연장 등을 추가로 협의할 방침이다.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