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3월 25일 09:52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우리 공정거래법은 미국이나 EU와 달리 거래상 지위남용을 중요한 규제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다. ‘거래상 지위남용’이란 자기의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상대방과 거래하는 행위를 말한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이러한 거래상 지위남용의 위법성은 ‘거래내용의 불공정성’, 즉 거래상대방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저해하거나 불이익을 강요함으로써 공정거래의 기반이 침해되거나 침해될 우려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거래조건이 불리하다는 사정만으로 그것이 곧 공정거래법이 개입할 문제가 되는가? 일부 견해에서는 위와 같은 관점에서 우리 법상 거래상 지위남용 규제의 폐지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근래에는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유사한 규제가 채택되고 있는데, ICN(International Competition Network)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에서는 별도의 입법을 통하여 거래상 지위남용 규제를 도입하고 있고, 미국의 경우에도 아직 연방 차원의 명시적 입법은 없지만 개별 주 단위에서는 이미 일정한 규제가 존재하는 상황이다.
최근 공정위는 거래상 지위남용 규제의 강화를 지속적으로 천명하고 있고, 온라인플랫폼에 관한 거래공정화법 역시 조만간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과연 거래상 지위남용이 무엇인지, 이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거래상 지위남용에 관한 특별법을 어떻게 입법하고 해석할 것인지 등에 관하여 아직 이론과 실무가 제대로 확립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하에서는 거래상 지위남용 규제의 발전적 전개를 위하여 큰 틀에서 몇 가지 근본적 문제점들을 살펴본다.
첫째, 거래상 지위남용 규제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판례는 “불공정거래행위의 한 유형으로 사업자의 우월적 지위의 남용행위를 규정하고 있는 것은 현실의 거래관계에서 경제력에 차이가 있는 거래주체 간에도 상호 대등한 지위에서 법이 보장하고자 하는 공정한 거래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상대적으로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업자에 대하여 그 지위를 남용하여 상대방에게 거래상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금지시키고자 하는 데 그 취지가 있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00. 6. 9. 선고 97누19427 판결 등).
한편 공정거래법령은 거래상 지위남용을 구입강제, 이익제공강요, 판매목표강제, 불이익제공, 경영간섭의 5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그 중 불이익제공을 ‘구입강제, 이익제공강요, 판매목표강제에 해당하는 행위 외의 방법으로 거래상대방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위’라고 규정하는바, 즉 불이익제공은 거래상 지위남용에 관한 일종의 일반규정에 해당한다. 이에 관하여 판례는 ‘불이익제공에 해당하기 위하여는 그 행위의 내용이 상대방에게 다소 불이익하다는 점만으로는 부족하고, 구입강제, 이익제공강요, 판매목표강제 등과 동일시할 수 있을 정도로 일방 당사자가 자기의 거래상의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불이익을 준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01. 12. 11. 선고 2000두833 판결 등).
위와 같은 법령과 판례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거래상 지위남용의 핵심은 불이익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거래상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거래상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였다는 것은 우월한 협상력을 이용하여 거래상대방의 자유로운 의사를 억압하였음을 의미한다. 결국 거래상 지위남용의 핵심은 ‘불이익’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불이익을 ‘강제’한 것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거래가 당사자 일방에게 다소 불이익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강제적으로 부과된 것이 아니라면 이를 부당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할 것이다.
둘째, 위와 같은 강제성의 판단방법 및 고려요소이다. 이에 관하여는 먼저 문제가 되는 지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부당한 공동행위에서 합의의 존부는 흔히 독립적 경영판단 → 단순한 모방행위 → 의식적 병행행위 → 동조적 행위 → 합의라는 단계적 구조 속에서 논의된다. 거래상 지위남용에서의 강제성 역시 일정한 단계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자발적 합의 → 강요된 합의 → 일방적 강제의 구조가 그것이다. 공정거래법이 개입하여야 할 부분은 단순히 불리한 조건이 포함된 ‘자발적 합의’가 아니라, 거래상 우월적 지위로 인하여 상대방의 선택이 실질적으로 제한된 상태에서 형성된 ‘강요된 합의’ 또는 ‘일방적 강제’의 영역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여기서 일방적 강제의 영역은 비교적 명확하다. 문제는 강요된 합의의 영역에서 발생한다. 현실의 거래에서는 거래상대방이 일응 불리함을 인식하면서도 ‘거래를 하지 않는 것보다는 거래를 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여 해당 거래조건을 수용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다소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예컨대 가격이 다소 비싸다고 생각하면서도 꼭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상품을 구입한 경우, 이를 ‘강매’라고 할 수 있는가?
이러한 문제에 관하여 대법원은 “납품업자의 동의가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그렇지 않고 납품업자가 거래관계의 지속을 위하여 어쩔 수 없는 강요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인지가 다투어지는 경우 법원으로서는 납품업자에 대한 대형할인점업자의 거래상 우월적 지위의 정도, 납품업자의 대형할인점업자에 대한 거래의존도, 거래관계의 지속성, 거래 상품의 특성과 시장상황, 거래 상대방의 변경가능성, 당초의 거래조건과 변경된 거래조건의 내용, 거래조건의 변경경위, 거래조건의 변경에 의하여 납품업자가 입은 불이익의 내용과 정도 등을 정상적인 거래관행이나 상관습 및 경험칙에 비추어 합리적으로 추단할 수밖에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03. 12. 26. 선고 2001두9646 판결 등).
위와 같은 판례는 원칙적으로 타당하다. 그런데 위와 같은 판시만으로 자발성과 강제성의 구별이 분명해졌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보다 명확한 판단기준을 확립하는 것은 이 글의 범위를 넘는 것이지만, 적어도 위 판단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사항은 충분히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우선 강제성 판단은 그 자체로 매우 신중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거래상 지위남용의 성립을 인정한다는 것은 일반 민법상 위법하지 않은 행위를 공정거래법을 적용함으로써 위법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단순히 거래조건이 불리하다는 사정만으로 손쉽게 강제성을 인정하여서는 안 된다. 현실의 거래에서는 어느 한쪽이 상대적으로 보다 유리한 조건을 얻는 일이 흔히 발생한다. 거래조건은 본질적으로 협상과 이해관계의 조정 속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완벽한 윈윈(Win-Win) 계약은 없다. 거래조건이 다소 불리하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강제성을 인정한다면 사실상 모든 거래가 거래상 지위남용이 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는 먼저 거래상대방이 해당 거래조건을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는지 살펴보아야 하고, 나아가 일방 당사자가 취한 유리한 거래조건이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지 않고서는 얻어낼 수 없는 성질이나 수준의 것인지 검토하여야 한다. 이 두 가지 요소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해당 거래는 협상 과정에서 형성된 ‘불리한 거래’일 수는 있어도 공정거래법이 개입하여야 할 ‘강제적 착취’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셋째, 거래상 지위남용에 관한 특별법의 문제이다. 공정거래법상 거래상 지위남용과 유사한 규율은 대규모유통업법, 대리점법, 가맹사업법, 하도급법 등 여러 특별법에서도 발견된다. 이러한 법률들은 특정한 산업분야 내지 거래유형별로 공정한 거래질서를 확보하기 위하여 도입된 규율로서 공정거래법상 불공정거래행위, 그 중에서도 특히 거래상 지위남용의 특칙에 해당한다.
그런데 위와 같은 공정거래특별법의 개별 규정들 중에는 ‘강제’ 또는 ‘강요’라는 문언이 명시되지 않은 경우가 여럿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우에는 해당 위반행위의 성립에 관하여 강제성을 고려할 필요가 없는 것일까?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특별법은 일반법의 적용을 구체화하거나 보완하는 것이지, 일반법의 본질적 요소 자체를 제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만일 특별법이 일반법의 본질적 요소를 제거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특별법이 아니라 별개의 규율이 될 뿐이다. 따라서 설령 ‘강제’라는 문언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거래상 지위남용의 특칙인 이상 강제성의 측면을 고려하여야 한다. 이와 달리 해석하는 것은 사실상 불이익만으로 거래상 지위남용을 인정하는 것으로서, 자발적 합의에 따른 거래마저 규제대상으로 포섭할 우려가 있다.
이에 관하여 공정위는 강제성을 위법행위의 성립요건으로 보지 않고 사업자의 ‘정당한 사유’ 판단에서 간접적으로 고려하는 경향이며, 법원 역시 대체로 위와 같은 입장을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이해와 실무는 증명책임의 분배와 관련하여 어려운 문제를 야기한다. 공정위 처분의 취소를 다투는 행정소송에서는 사업자가 정당한 사유가 있음, 즉 ‘강제성 없음’을 증명하여야 하고, 반면 공정거래 형사소송에서는 검사가 정당한 사유가 없음, 즉 ‘강제성 있음’을 증명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정당한 사유에 관한 문제일 수도 있으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거래상 지위남용의 본질인 강제성에 관한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에 더 심각하다.
거래상 지위남용에서 문제되는 강제성은 명확하게 드러나는 경우도 있지만 경계선상에 놓여있는 경우가 많고, 결국 위와 같은 증명책임의 소재가 사실상 결론을 좌우하는 측면이 있다. 실제로 최근 공정거래 형사집행이 강화되면서 동일한 사안에 관하여 행정재판과 형사재판의 결론이 서로 다른 경우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행정규제가 아닌 형사처벌을 위한 추가적 요건, 즉 범죄의 고의 등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위와 같이 사실상 동일한 쟁점에 관하여 그 증명책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는 것이 타당한가? 소송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겠지만, 적어도 건전한 상식과 일반적 법감정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강제성의 의미와 체계를 정립하는 것은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공정거래법상 거래상 지위남용 규제를 이른바 ‘순수한 경쟁법’이 아니라는 이유로 폄하할 일은 아니다. 거래상 지위남용 규제는 공정한 거래질서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서 지속가능한 시장경제의 담보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합리화해 나갈 것인지에 있다 할 것이다.
완벽한 윈윈 계약은 존재하지 않는다. 거래에서 어느 한쪽이 더 유리한 조건을 얻는 일은 시장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경쟁 또는 협상의 결과로 형성된 불리한 거래까지 모두 규제대상으로 삼는다면 시장의 자율적인 협상구조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
불리한 거래 자체는 공정거래법의 문제가 아니다. 공정거래법이 개입하여야 할 순간은 그 불리함이 강제된 때이다. 규제의 정당성과 예측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위 강제성의 의미와 판단기준, 체계를 보다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필자가 속한 법률사무소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